카테고리 없음

'스마트 그리드'로 달려가는 미국

凡石 2009. 8. 1. 15:45

 

연방정부 ‘전력망 선진화’ 예산의 40% 할당
재생에너지 효율성 높이려면 필요한 시스템
업계 새 성장동력…벤처캐피털 투자 집중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중심가에는 요즘 도로 공사가 잦다. 툭하면 정전사고가 일어나 지하 전력설비를 고치기 때문이다. 회사원 서니 리는 “5월에만 근무시간에 세 번이나 전기가 끊겼다”고 말했다. 북 캘리포니아 최대 에너지회사인 퍼시픽가스전력(PG&E)으로부터 전기를 받는 가구는 지난해 평균 정전시간이 5시간57분이다. 송배전 시설이 낡은데다 디지털기기 보급 확산에 따른 전기 수요만큼 발전설비가 늘어나지 못한 결과다.

 

지난 130년간 인류 문명은 전기에 의존해왔지만, 송배전 기술에는 변화가 없었다. 저장을 할 수 없는 전기의 특성 때문에 예비전력설비를 넉넉하게 갖춰놓고 실시간 수요에 따라 송전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보기술(IT)과 전기가 결합한 ‘지능형 전력망’(스마트 그리드)으로 전력산업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스마트 그리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배경은 두 가지다. 낡은 송배전망을 대체해야 하고,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해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려면 새로운 시스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스마트 그리드를 중심축으로 에너지시스템 개혁을 이끌고 있다. 캘리포니아 에너지위원회(CEC)의 마이클 그레이블리 에너지시스템 연구부장은 “지난해 11%였던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내년에는 20%까지 높이고, 2030년에는 33%를 달성하는 게 캘리포니아주 목표”라며 “대체에너지는 에너지 효율이 낮은 단점이 있지만 스마트 그리드와 결합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는 기후 조건에 따라 생산량이 급변하기 때문에 수급 안정성이 문제다. 갑자기 바람이 멈추거나 구름이 낄 경우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능적인 전력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지능형 전력망은 전기 수요자들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전력 사정에 따라 사용량을 통제할 수 있는 지능형 전기계량기를 필요로 한다. 전기 공급 사정에 따라 세탁기나 난방 등 시급하지 않은 기기의 사용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다. 수요자는 수급 사정뿐 아니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전기 요금 정보를 파악해 사용 시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는 2012년까지 1200만 가구에 지능형 전기계량기(스마트 미터)를 보급할 계획이다. 주정부가 설치비용 1만4000달러 가운데 절반 이상을 보조해준다. 미 연방정부는 최근 확정한 경기부양책에서 110억달러를 전력망 선진화에 할당했고, 이 가운데 45억달러를 스마트 그리드에 투자하기로 했다.

 

스마트 그리드는 산업계엔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분야로 쏠리던 벤처캐피털 투자가 최근에는 스마트 그리드 분야로 집중되고 있다. 스마트 미터 분야 선도기업인 실버스프링네트웍스는 최근 흑자로 돌아섰고,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최근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커넥티비티 컨퍼런스’는 스마트 그리드를 어떻게 산업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이 컨퍼런스는 가정, 기업, 사회기반시설, 건물 등 4가지 분야에서 어떻게 하면 에너지 연계성과 효율성을 높일지 모색했다. 컨퍼런스를 참관한 한국전기연구원 김대경 전력설비연구센터장은 “스마트 그리드가 향후 어떻게 기존 분야랑 연계돼 사업화할 수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컨퍼런스에선 스마트 미터와 전기로 충전하는 플러그인 전기 자동차, 빙축 냉방시스템 등 전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다양한 기술과 제품이 선을 보였다.

새크라멘토·산타클라라(미국 캘리포니아)/

글·사진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시범 실시업체 이쉴론 “불편 거의 못느껴”

 

미국의 ‘스마트 그리드’는 정부의 지원 정책과 함께 민간의 활발한 상업화 시도를 동력으로 하고 있다. 새너제이에 있는 ‘이쉴론’(Echelon)은 건물용 전기관리시스템을 만들며 스마트 그리드의 미래를 보여주는 회사다. 앤더스 액설슨 부사장은 대형 빌딩 등 전기사용량이 많은 시설에서 전력을 지능적으로 통제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시현했다. 층별로 사무실의 냉난방·환기·조명 등 다양한 전기 기기에 통신망과 연결된 제어장치를 달아 인터넷서버에서 관리한다. 하나의 서버에 400개의 전기 기기가 연결돼 제어를 받는다. 이쉴론 3층 건물은 ‘론웍스’라는 제어장치를 설치한 뒤 전력중개사업자와 특정 시간대에는 전기 공급을 제한하는 계약을 맺어, 종전보다 30%의 전기요금을 감면받고 있다. 엑설슨 부사장은 “전기 공급이 제한되는 기기와 범위를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정하는데, 전력 수요가 가장 많은 시간대에 외관 조명이나 실내온도 등을 제한하고 있다”며 “사용자는 거의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스마트 그리드를 통해 가정이나 사업장 단위에서 수요를 통제하면 발전소를 짓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전력중개회사들은 전기 소비자들과 계약을 맺어 특정 시간대에 수요를 줄일 것을 약정하고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값이 싼 전기요금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 미터를 장착한 1만 가구와 7~8월 전기수요가 최고조인 시간 대에 전기사용을 10% 줄이기로 약정해 필요할 때 공급을 통제하는 대신 전기료 20% 할인혜택을 준다. 중개사업자는 이렇게 1만 가구로부터 모은 전력 감소분을 다시 전력거래소에 비싼 값으로 팔아 이익을 남긴다. 이렇게 하면 1년에 두 달짜리 수요에 대비해 10개월 내내 가동하지 않는 값비싼 발전시설을 건설·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전력 중개사업자가 전기 생산 없이도 발전소를 운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가상 발전소’의 개념이다. 이 모든 것이 스마트 그리드를 통해서 가능하다. 구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