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그림, 사진

고흐

凡石 2009. 5. 5. 21:22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1887
-캔버스에 유채,35.5x27cm
-Detroit,Detroit Institute of Arts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1887
-캔버스에 유채
-Amsterdam, Van Gogh Museum Netherlands

 

 

 

 
1885년 파리에서, 고흐는 그의 그림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건 바로 인상파화가들이었다.화상으로 성공한 동생 테오를 통해 그는 마네, 로트렉, 피사로, 고갱, 드가 등 인상파 화가들을 만난 것이다. 고흐는 인상파의 그림에서 충격을 받는다. 그들의 그림에서는 빛과 공기가 만져졌다. 무엇보다도 인상파화가들은 고전회화기법을 깨고 주관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그린 최초 화가들이었다.
 
인상파와의 만남을 계기로 고흐의 그림은 획기적으로 바뀐다. 어두웠던 그의 그림은 점점 밝아지고, 강렬한 색조를 띠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고흐식의 고집해온 그림 스타일이 자리를 잡아간다. 오랜 반복과 시행착오 끝에 고흐는 그만의 색깔을 찾은 것이다. 점점 빛나기 시작한 그의
오베르(Auvers 1890,5~1890,7)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오베르에서 빈센트는 죽기 전까지 3개월 동안
77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남프랑스의 강렬한 햇빛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색들을 화폭에 담았고, 자신을 돌봐 준 닥터 가셰와 하숙집 라부 가족들을
모델로 하여 많은 인물화를 남겼습니다.

 

생레미 요양원의 생활을 견딜 수 없었던 고흐는 테오의 권유로 파리의 피갈 8번지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그해 5월 17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머물지 않으려 했다. 또 떠나기로 했다. 이번의 행선지는 오베르 쉬르 오아즈였다. 그곳에는 의사이자 화가이며 피사로와 폴 세잔의 친구인 폴 페르디낭 가셰가 있었다.

 

오베르 쉬즈 오아즈로 옮긴 그는 라부 부부의 여인숙에 방을 얻어 살면서 닥터 가셰의 치료을 받았다. 6월말 테오가 직장에서의 갈등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파리를 방문했던 고흐는 테오와 돈 문제로 다투고 오베르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 '오베르의 교회'등을 그렸다.

 

1890년 7월 27일, 초라한 다락방의 침대 위세 피를 흘리고 누워있는 그를 라부의 가족이 발견했다. 그 스스로 가슴에 총탄을 쏜 것이다. 오베르의 성 뒤쪽에 있는 밀밭에서, 닥터 가셰와 닥터 마제리가 라부의 집으로 급히 달려왔다.

 

이튿날, 파리에 있던 테오는 가셰의 편지를 받고 오베르로 왔다. 두 형제는 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밤 고흐는 의식을 잃었고, 7월 29일 새벽 1시 30분 동생의 품에 안긴 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파란 가득한 삶을 마감했다.

 

7월 30일, 고흐는 테오, 베르나르, 탕기 영감, 가셰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베르의 묘지에 묻혔다. 8월에 테오가 베르나르의 도움으로 콩마르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고흐의 추모전을 열었다.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인 1891년 1월 25일, 형의 죽음 이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테오가 네덜란드의 우트레히트에서 3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1914년 테오의 화장된 유해는 형의 무덤 옆에 안치되었다.

 

 

 

 

 

Pere Eloi의 의회
1890년 5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Switzerland, private collection
 
 

 

 

오두막집
1890년 5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St. Petersburg, Hermitage
 
 

 

 

오베르 바라보기
1890년 5~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Amsterdam,
Van Gogh Museum
 
 

 

 

밀의 귀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Amsterdam,
Van Gogh Museum
 
 

 

 

오베르의 집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Toledo (Oh.), The Toledo Museum of Art
 
 

 

 

두명의 아이들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Private
collection
 
 

 

 

작은 개울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New York, private collection
 
 

 

 

Daubigny의 정원.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Amsterdam,
Van Gogh Museum
 
테오에게..
 
.........
 
요즘에는 온통 그림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고 존경했던 화가들처럼 잘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
 
동봉한 것은 도비니의 정원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자기 스케치 한 것이다. 내가 가장 세심하게 생각해서 그린 작품 중 하나이다. 구식으로 이엉을 인 지붕과 비온 후의 광대한 밀밭 정경을 그린 30호 크기 그림 두 점도 대략 스케치 했다.
 
                                                                                                          1890년 7월 24일.
 
고흐가 보낸 마지막 편지.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

1890년 5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Otterlo Kroller-Muller Museum Netherlands
 
 

 

 

 
 
고갱에게..
 
...........
 
최근에는 옆으로 별 하나가 보이는 실편백나무 그림을 그리고 있네. 눈에 뜨일락말락 이제 겨우 조금 차오른 초생달이 어두운 땅에서 솟아난 듯 떠 있는 밤 하늘, 그 군청색 하늘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그 사이로 과장된 광채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 있네. 분홍색과 초록의 부드러운 반짝임이지. 아래쪽에는 키 큰 노란색 갈대들이 늘어선 길이 보이고 갈대 뒤에는 파란색의 나즈막한 산이 있지. 오래된 시골 여관에서는 창으로 오랜지색 불빛이 새어나오고, 그리고 아주 키 큰 실편백나무가 꼿꼿하게 서 있네.
 
길에는 하얀 말이 묶여 있는 노란색 마차가 서 있고, 갈 길이 저물어 서성거리는 나그네의 모습도 보인다네. 아주 낭만적이고 프로방스 냄새가 많이 나는 풍경이지.
 
일밭도 이런식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네. 아직은 그리지 못했지만. 청록색 이삭줄기밖에 없는 그림 말일세. 길쭉한 잎은 빛이 반사되어 초록색과 분홍색 리본처럼 보이고, 길가에 활작 핀 꽃은 먼지에 덮여 흐린 분홍색을 띠고 있지. 이삭은 누렇게 변해가고, 그 아래쪽에 분홍색 메꽃이 피어 있는 것도 눈에 띄네.
 
이렇게 생생하면서도 고요한 배경에 인물을 그려넣고 싶네. 같은 색이지만 농도가 다른 다양한 초록색이 하나의 초록색을 형성해서는, 산들바람에 이삭이 부대끼면서 내느 부드러운 소리를 연상시키는 그림 말일세. 물론 그런 색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
 
                                                                                                       1890년 6월..

 

의사 가셰의 초상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Paris Musee d'Orsay France

 

 

 


 

 

의사 가셰의 초상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Private
collection
 
테오에게..
 
닥터 가셰는 어딘지 아파보이고 멍해 보인다. 그는 나이가 많은데, 몇 년 전에 아내를 잃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의사인데다 일과 신념이 그를 잘 지탱해 주는 것 같다. 우리는 쉽게 친해졌다. 그도 몽펠리에의 브뤼야스를 잘 알고있었는데, 현대 미술사에서 그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내 의견에 동의했다.
 
요즘은 그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아주 환한 금발에 하얀색 모자를 쓰고, 환항 살색의 손을 빨간 탁자에 기대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파란색 연미복을 입었는데, 바탕도 코발트 블루이다. 탁자 위에는 노란색 책 한 권과  보라색 디기탈리스 꽃이 놓여있다. 이 초상화는 이 곳으로 올 때 그린 자화상과 같은 감정을 담아 그렸다.
 
닥터 가셰는 이 초상화를 아주 좋아해서, 가능하면 똑같은 걸 하나 더 그려서 자기에게 줄 수 없겠냐고 했다. 나도 그럴 생각이다. 그는 '아를의 여인'도 좋아한다. 너도 그걸 분홍색으로 그린 습작을 가지고 있지. 닥터 가셰는 이 두 그림의 습작을 보기 위해 이따금 들르곤 했는데, 습작도 무척 좋아한다.
 
                                                                                                              1890년 6월 4일..

 

 

들판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The Hague, Haags Gemeentemuseum
 
 

 

 

밤의 하얀집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St. Petersburg Hermitage
Russia
 
 

 

 

두 사람이 있는 덤불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Cincinnati Cincinnati Art Museum United States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
1890년 7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Amsterdam,
Van Gogh Museum
Netherlands
 
테오에게..
 
다정한 편지, 그리고 50프랑 고맙게 잘 받았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고, 그게 중요한 분제이니, 내가 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고집하겠지? 좀 쉬어서 더 개운해진 머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잇는 것도 아닌데. 하긴 그건 아직 아득한 일이겠지.
 
화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든, 돈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그래, 정말 우리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랑하는 동생아, 내가 늘 말해왔고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나는 네가 단순한 화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는 나를 통해서 직접 그림을 제작하는 일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그림은 파산의 순간에도 냉정으 유지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에서 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은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 살아있는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 사이에는 아주 긴장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글쎄, 내 그림. 그것에 내 생명을 걸었고, 머리도 그것때문에 흐리멍텅해졌다. 좋아,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너는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꾼은 아니다.
 
네 입장을 정하고 진정으로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도대체 넌 뭘 바라는 것이냐?
 
이 편지는 7월 29일 고흐가 사망할 당시 지니고 있던 것인데, 그동안 그가 쓴 마지막 편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1890년7월 24일 이전에 씌여진 것으로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부치지 않았다고 한다.
 

 

 

오베르의 교회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Paris
Musee d'Orsay
France
 
 

 

 

꼬르드빌의 초가집
1890년 5~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Paris
Musee d'Orsay
France
 
 

 

 

오베르의 거리
1890년 5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Helsinki Atheneumin Taidemuseo
Finland
 
 

 

 

오베르의 집
1890년 5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Boston
Museum of Fine Arts
United States
 
 

 

 

두 사람이 있는 농장
1890년 5~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Amsterdam,
Van Gogh Museum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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