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그림, 사진

전(傳) 사임당 신씨의 초충도

凡石 2009. 5. 5. 21:03

 

사임당은 그림과 글씨에 뛰어났다.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에 대한 첫번째 언급은 율곡 이이가 쓴 <선비행장>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 구절은 사임당이 다재한 인물이었음을 잘 말해 준다. 

  어릴 때부터 경전에 통달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고, 또 바느질에 능해서 수놓은 것까지도 정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중략) 평소에 그림 솜씨가 비범하여 일곱 살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산수화를 그렸으며 또 포도를 그렸으니, 모두 세상에서 견줄 만한 이가 없었다. 그 그림을 모사한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많이 전한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구절은 ‘산수화와 포도도가 세상에서 견줄 만한 이가 없었다’이다. 어머니를 대상으로 쓴 행장이므로 아들의 주관이 배제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하여도 이 기록을 통해 신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시·서·화로써 자신의 재능을 표현한 여성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재능을 시와 그림, 글씨로 표현해 낸 사임당은 남다르다. 현재 전하는 산수도와 포도도는 여느 문인화가나 화원이 그린 그림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따로 스승을 두거나 체계적인 학습을 통해 획득한 재능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해 얻은 결과물이기에 더욱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임당은 초충도 그림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이 사임당이 그린 다른 화목의 그림보다 특히 초충도를 많이 기억하는 것은 그림의 소재가 주는 평이함 때문일 것이다.

  초충도는 풀과 벌레그림이다. 좀더 큰 의미로는 꽃을 피우는 식물과 날벌레와 길벌레에 개구리, 도마뱀, 쥐를 포함시킨 그림을 일컫기도 한다. 이처럼 초충도의 소재는 우리가 집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과 벌레들로 구성된다. 오이·수박·가지·양귀비·맨드라미·원추리·봉선화 등의 식물과 나비·벌·메뚜기·여치·방아깨비·쇠똥벌레 등의 벌레가 그것이다.

  특히 소재로 사용된 식물들은 대부분 다산을 상징하는 것들이어서 초충도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를 화폭에 담았다는 친근성 외에도 가문의 번창과 자녀들의 입신양명 같은 상징성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저지 바탕에 그려진 수묵채색화로서 기존의 수묵화나 수묵담채화보다 색감이 더욱 도드라진다는 점에서도 이색적이다.

 

 

 

제1폭에는 가지·방아깨비·개미·나방·벌 등이 등장하고 있다. 땅위에 개미 한 쌍과 방아깨비가 기어다니고, 위쪽에는 나비·벌·나방이 날고 있다. 자연 생태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제2폭에는 수박·들쥐·패랭이꽃·나비·나방 등이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수박을 파먹는 들쥐 두 마리의 모습이 흥미롭다. 민화에서는 수박이 다남(多男)의 상징물로 여기지만 이 그림에서는 그런 의미와는 상관이 없다. 

 

 

 

제3폭은 공간을 나는 나비, 원추리꽃 줄기에 붙은 매미, 뛰어 오르려는 개구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화폭의 것과 같은 구성 요소와 짜임새를 가진 문양이 반닫이나 장롱 등 가구 장식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원추리는 일명 망우초(忘憂草), 또는 훤초(萱草)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시경 詩經》에서 유래한 것으로, 근심을 잊고 답답함을 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저 흔히 보는 식물 중 하나일 뿐이다.

 

 

 

 

 

 

 

제4폭에는 여뀌·메꽃·잠자리·벌·사마귀 등이 등장하고 있다. 잠자리는 여뀌 주위를 날고 있고, 사마귀는 땅을 기면서 벌을 노리고 있다. 사마귀는 민화나 다른 그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소재이지만 초충도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제5폭에는 맨드라미·산국화·나비·쇠똥벌레 등이 등장하고 있다. 쇠똥벌레 세 마리가 제나름대로 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나비는 맨드라미 주변을 무리지어 날아다니고 있다. 이 화면의 주인격인 맨드라미는 계관화(鷄冠花)라고도 부르는데, 민화에서는 관계에로의 진출을 상징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것과 상관없이 보인다.

 

 

 

제6폭에는 어숭이꽃·도라지·나비·벌·잠자리·개구리·메뚜기가 등장하고 있다. 나비와 잠자리는 어숭이꽃과 도라지꽃 주위를 맴돌고 있고, 개구리는 땅에 기는 메뚜기보다 허공을 나는 나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잠자리는 고려 동경이나 도자기 장식 문양에 등장한 예가 있으나 다른 그림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제7폭에는 양귀비·패랭이꽃·달개비·도마뱀·갑충 등이 등장하고 있다. 도마뱀이 고개를 돌려 갑충의 거동을 살피는 모습이 재미있다.


 

 

 

제8폭에는 개구리·땅강아지·벌·오이·강아지풀 등이 그려져 있다. 개구리가 땅강아지를 잡아먹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