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DJ 오미희씨 시련 이겨내며 방송 일 계속
탤런트 이주실씨 13년 투병 끝에 거의 완치돼
가수 올리비아 뉴튼존, 레이건 대통령 부인 낸시 레이건도 유방암에 걸려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유방 모두 잘라내, 베티 데이비스는 합병증으로 사망
“엄마 가슴에서 무엇이 만져지는 것 같아요.” 1993년 11월 연극배우이자 탤런트 이주실씨에게 딸이 말했다. 병원을 찾았더니 유방암 3기라고 했다. 담당 의사는 “임파와 늑골까지 암세포가 침습해 1년밖에 살 수 없다”고 했다. 한쪽 가슴을 도려냈다.
“이 빈방을 무엇으로 채우랴. 갑자기 못 견디게 쓸쓸해지는 야릇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그때 그녀의 마음이 딱 이랬다.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주사실 문 앞엔 “구토를 하시는 분들은 꼭 검은색 비닐봉투를 준비해 주시기 바란다”는 글귀가 써있었다. 불쾌하고 두려웠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몸무게는 40㎏ 이하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큰 걱정은 두 딸이었다. 이혼한 뒤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는데, 두 딸은 누가 돌볼까. 아이들을 강제로 유학 보낸 뒤 이씨는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는 연극과 봉사 활동에 매진했다.
그렇게 13년이 훌쩍 흘렀다. 투병 중이던 2000년 그는 꽃동네 사회복지대에 입학했다. “투병 생활이 신의 은총”이라며 봉사 활동에 헌신을 다했다. 항암 치료를 받느라 한쪽 눈이 잘 안보이고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참 열심히도 살았다. 구토와 하혈이 반복된 생활이었다. 그렇게 4년을 보낸 뒤 2005년에 사회복지대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 임상사회사업 대학원에까지 진학했다. 세상과의 이별까지 각오한 삶이었지만, 이제 그의 병은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나았다. 영화에 출연하는가 하면 안방극장에까지 복귀했다.
유방암에 걸린 이들은 처음에 가슴을 도려내야 한다는 절망감, 세상과 이별할 날이 곧 올 수 있다고 여기는 공포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게 유방암이라는 병마(病魔)와 싸운 이들 중엔 유명인들도 많았다. 그들의 투병기와 극복기는 일반인들에게 꿈이 되고 희망이 되기도 한다.
지난 8월 31일 서울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열린 암 환자를 위한 기도 모임 ‘힐링 터치(Healing Touch)’. 하얀 환자복을 입고 항암 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져 모자를 쓴 이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강당의 통로에 늘어선 링거대는 거리의 가로등 같았다. 예배가 무르익어가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간호사와 보호자는 환자의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때 낯익은 얼굴의 한 여성이 강단에 섰다. “2004년 시드니올림픽 마라톤대회에 브라질 출신 리마라는 선수가 있었어요. 선두를 유지했지만 갑자기 옆에서 괴한이 나타나 그 선수를 당겼죠. 리마 선수는 1등을 못했지만 웃으면서 골인하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아, 나도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해야지, 하고서요.”
그는 바로 라디오 DJ로 애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오미희(48)씨다. 그 역시 1998년 1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7년여 동안 전 남편과의 이혼 소송을 벌인 데다 암 진단까지 받았으니, 시련의 시간 그 자체였다. 이랬던 그에게 한 마라톤 선수가 희망과 의지를 안겨준 것이다.
암 투병 중에도 오씨는 라디오 DJ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암 환자들을 만나고 다니며 격려했고, 최근에는 구순구개열(일명 ‘언청이’) 어린이를 수술해줄 수 있는 후원자를 찾는 일에도 여념이 없다. 연기 생활 27년 만에 영화도 찍었다. 지난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라는 영화에 나왔고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스승의 은혜’에서도 열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