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그림, 사진

취묵헌 인영선을 회고하면서...

凡石 2009. 5. 7. 09:48

     

갑자기 옛날 내가 살던 고향 아산, 탕정, 구리미를 회상하다 보니, 언뜻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서예가 취묵헌 인영선이다.

그는 나의 초등학교 2년 선배이자, 외가로는 아저씨뻘이 되는 분이다. 그리고 소시적에는 우리 집과 한 울타리를 사용한 이웃 사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불현듯 생각이 났는지도 모른다.

 

가끔 지인들을 통하거나 인터넷 웹을 통해, 우리나라 서예계에 커다란 행적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으나, 고향을 떠난지

약 40여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연락도 없이 무심하게 지냈다.  

 

비단 이 분만이 아니라 많은 친지들도 매 마찬가지이다. 이제 환갑 나이가 지나다 보니 그동안 잊고 지낸 친지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머리 속에 떠 오른다. "그동안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지" 라고 스스로 변명 해 보지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그동안 살아 오면서 나 자신의 생각이 옹졸하여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그만큼 부족한 탓이라고 보면서,  앞으로는 마음적으로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 보며, 그동안 잊고 지낸 분들에게 안부를 전할까 한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그가 <21세기 대한민국 중진 서예가10인>에 속하는 시·서·화(詩書畵)의 대가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로서는 자랑스럽기만 하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훌륭한 후계자를 양성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본다. 모쪼록 건강하시기 바라면서 이 분야에 최고의 대가로 길이길이 남으시기 바란다.

 

 

 

 

위 사진은 모교인 탕정초교 개축준공 기념으로 총동문회에서 기증한 교훈탑이다. 취묵헌 인영선 선배의 글이다.

 

 

 墨香과 酒香과 文香 속에서 빚어낸 書香

 

 서예가 취묵헌 인영선 선생을 형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단어는 바로 선생이 자호한 것처럼 먹에 취한 ‘묵선墨仙’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 먹은 서예에 있어 가장 중심적인 재료 가운데 하나이다. 붓이 작가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1차매재라면 먹은 붓의 움직임에 의지해서 자신의 몸을 내 던지는 2차매재일 것이다. 붓이 잘 드러나는 존재라면 먹은 뒤에서 묵묵히 자신을 감추면서 붓을 보좌하는 숨어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고상한 운치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먹이기에 먹이 없으면 천하의 옥판선지나 털 부드러운 붓도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선생이 먹과 술과 글에 취해 사는 것은 내로라하는 천안의 식자들과 서예가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일이니 그의 서예에 대한 탐구가 여타작가와 구별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40년 세월 동안 붓을 곧추세우고 먹에 취해 온 작가의 인간미 물씬 풍기는 삶과 작품을 통해 어렴풋이 그 향기에 접근해 보려고 한다.

 

 서예를 향한 열정하나로 지은 40년 붓농사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시간을 달려 취묵헌醉墨軒 인영선印永宣 선생의 서실에 당도하니 서설이 내린다. 서실입구엔 중국서법가협회 주석 심붕이 휘호한 醉墨軒이란 당호가 걸려있고 널찍한 작가의 방에 들어서자 한쪽벽은 책으로 가득하고 맞은편 벽에는 작품이 여러 점 걸려 있고 오래된 마란쯔 전축이 자리하고 있다. 눈에 띄는 작품은 제백석이 휘호한 醉墨軒이라는 또 다른 액자인데 마치 자신을 생각하고서 휘호한 것 같아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선생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소주 4병을 비워내며 여지껏 먹을 갈아온 역정을 술회하였다.
 취묵헌 선생은 1946년 아산에서 한묵을 가까이 하는 집의 육남매 중 사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서예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여섯살 위인 형의 덕분이었다. 그의 형은 돌 지난 후 갑자기 소아마비 증세를 보여서 대소병원을 찾아 치료를 해 보았지만 결국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선생의 부친은 집안에 훈장을 초빙하여 불편한 아들의 평생 업業을 위하여 한문과 서예를 지도하게 된다. 선생이 두 살 때 훈장을 초빙하여 8년간 계속되었는데 세 살부터 글읽는 사랑으로 나와 훈장의 무릎에 앉아 어깨너머로 한자를 깨우치기 시작하여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명석하였다. 이 때 서당에서 지도하던 쌍구목판본의 안진경과 유공권의 첩을 보고 글씨를 척척 써내기도 하였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글쓰는 환경과 잠시 멀어졌으나 천안농고 2학년 때 학교에 장학시찰이 있으니 교장실에 글 한점을 써서 붙이라는 교장의 부탁으로 반절지에 원곡체로 한글을 써서  표구까지 하여 걸게된다. 이 작품을 본 교육청 학무과장이 격려해 주었는데 그 분이 필연筆緣을 맺은 소심재素心齋 임형수林亨洙선생으로 평생의 지기가 된 석헌 임재우씨의 부친이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소심재 선생으로부터 지도를 받고 서예자료도 빌려보면서 안목을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는 서예자료를 구하면 밤을 새워 임서하곤 하였는데 하소기의 법첩을 구한 어느해 열심히 임서하여 전시를 하기도 하였고,(그림 1) 동국대, 조선대 등의 학생대회와 동방연서회 주최 학생대회에서 입상하였다. 고3 때는 국전에 출품하기도 하엿다. 

 

1966년 문공부 주최 신인예술상에 입선하였고, 1967년 경희대 국문과에 입학하자 시인 조병화 교수와 조영식 총장이 서예를 잘 한다고 눈여겨 보게 되었다. 대학시절 필재가 알려지면서 영문과 박용수 교수의 주선으로 학생신분으로 교내에서 초대전을 열기도 하였다. 1972년 ROTC 장교로 제대한 뒤 필묵으로 일생을 보내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좋은 취직자리와 교사의 길을 뒤로한 채 천안에서 처음으로 서실을 개원하였다. 1975년 충남도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1976년 공개심사제를 도입한 국전에 10년 동안 낙선하다 비로소 입선한 이래 5회의 입선을 하고 1984년 현대미술관초대전에 출품하여 공모전을 마감하였다. 그 동안 개인전은 80년, 86년, 90년, 94년, 2002년 등 5회를 열어서 국내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고, 89년 천안시민의 상(문화상)을 수상하면서 천안문화예술계의 주목받는 명인이 되었다.

 

 먹향속에서 빚어낸 글씨


  선생의 초기작품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1965, 66년)에 부드러운 필획으로 쓴 <석고문>(그림 2)이다. 1960년대 중■후반경 국내에서 체계적인 법첩공부가 성행하지 않을때였지만 고전에 천착해서 자성일가를 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전서의 획맛을 터득해야 무게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선생의 중봉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듯 하다. 오창석의 필의를 핍진하게 해석해내고 있는 이 시기의 작품에는 소심재선생이 지어준 동산이란 호와 인장이 보인다. 1969년 대학에 입학할 무렵 법첩이 귀한던 때 명가들의 휘호를 스크랩해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 때는 검여 선생의 힘찬글씨가 좋아보여서 임서해 보던 시절이었다.  <채국동리하>(그림 3)는 이 때의 작품으로 예서체를 크게하여 중심귀절을 서사하고 발문형식으로 행초를 썼는데 南자와 年자의 세로획을 길게 뽑아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선생은 초기의 작품부터 전통적인 심미준칙에서 일정부분 일탈한 분방하고 자유로운 점을 볼 수 있다. 대개 초기의 작품은 단아하고 정제미를 보이거나 필획의 맛이 활달하지 못한데 선생의 경우 거리낌없이 휘호하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대소강약을 살린 행초의 활달함을 엿볼 수 있다. 선생의 서예에 있어 특기할 만한 파격적인 양상과 지속적인 실험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70년대 중반 천안에서 서실을 개원한 뒤 서예를 전업으로 하면서 전서와 행초서에 대한 실험적인 탐구는 더욱 불을 당긴다. 이러한 결과는 1980년 천안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나타난다. 취묵헌이라고 자호한 이 때의 작품에서는 금문에 대한 연구열기를 엿볼 수 있다. 작품 <무량수>(그림 4)에는 착종된 금문의 상형성과 거침없는 행초서를 통해 먹에 취해서 살겠노라는 선생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일중선생은 도록에서 “청정무구한 풍격으로 각 체의 연구에 열성을 다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1986년 백악미술관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 파격적인 실험정신은 더욱 광채를 낸다. <대상무형>(그림 5)에서는 먹의 중량감과 획의 굳건함이 코끼리를 나타내는 象자와 어울어져 그야말로 먹이주는 운율을 흠씬 느끼게 한다. 이 전시의 도록에서 자서를 통해  “산을 오르는 자세로 먹의 농담濃淡을 살리고 선질이 갖는 지遲■속速■완緩■급急과 붓이 갖는 예銳■제齊■건健■원圓을 섞어서 태態를 이루겠다”는 자신의 학서자세를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1990년 백악미술관에서 열린 세 번째 개인전에서는 또 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획을 이용한 문자의 유희는 새로운 차원의 문인화로 불러도 좋을 듯 하다. <燕巢>(그림 6)는 새 집을 장만하고 그 감흥을 작품으로 승화한 것으로 여백과 단촐한 선으로 된 문인화적인 작품이다. <蔚州舊香>(그림 7)은 먹의 농담과 상형성이 더 두드러진다. 마치 어린아이의 유희를 연상케 하는 분방한 운필들은 문자속에 갇힌 기성의 조형적 규범이나 준칙에서 일탈하고 있다. 먹에 취해 살려는 선생의 자유롭고 무질서한 획의 집적은 상호작용을 통해 더 큰 질서를 구축하고, 숨결과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육화되어 먹에 노닐고자 하는[遊於墨] 자신을 형상화 해 내고 있다. 획과 먹의 집적에 의해 묵운이 짙게 배어 나오는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먹 자체가 지닌 고유한 심미적 내용에 깊이 있게 천착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서화를 종합한 작품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사람은 새와 같지 않은데 새는 날이 지면 자기의 둥지를 찾아갈 줄 아는데 사람인 나는 언제 내 숲을 찾아가리오[人而不如鳥 何日去投林]” 이 짧은 글은 젊은 시절부터 선생이 자신의 예도를 재촉하면서 즐겨 암송하던 구절이다. 욕심없이 자신의 글을 쓰고 싶다는 선생의 마음은 이제 손끝의 기교를 지양하고 마음으로 쓰는 서예를 하고 싶어한다. 1997년 제작한 <野馬脫繮>(그림 8)에서는 추사가 작고하기 3일전 휘호하였다는 봉은사의 <판전>을 연상케 한다. 얽메임없이 훌훌 벗어던지고 소요하는 스님처럼 유유자적하게 마음으로 노니는 듯 하다. 작품의 내용처럼 들판의 말이 고삐없이 마음껏 다닌다는 그 느낌 그대로 시각화하고 있다. 2001년 제작된 <龜步>(그림 9)는 이미지와 내용이 부절처럼 융합되는 작품이다. 인생과 예술은 거북이처럼 천천히 쉬임없이 나아갈 때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법. 1998년의 초서 <下筆無滯>(그림 10)는 붓을 지면에 낙필 한 뒤 일필로 휘호한다는 내용과 형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져 文質彬彬한 느낌이 든다. 40년에 가까운 실험을 통해 비로소 선생의 모습 그대로 확신에 찬 붓놀림이 나온 것이다. 2004년 벽두에 제작한 <日出>(그림 11)은 세계적인 서예를 염두에 두고 휘호한 작품이다. 산 위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하는 태양의 힘찬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제 바햐흐로 먹과 붓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하여 세계인을 공감시킬 조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도발적인 실험정신과 과감한 변화를 쉬임없이 지속적으로 모색해 온 선생의 작업과정을 작가정신으로 형용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이는 먹에 대한 구도자적인 신앙이자 신념의 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먹에 취해 살겠다는 각오로 취묵헌이라고 자호하였고, 문사철을 갖추어야 진정한 서예작품을 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국문과에 진학하여 문학적 소양을 길러왔고, 마음이 담긴 작품을 해보기 위하여 술에 취해서 인생과 예술을 관조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생을 단순히 먹에 취해 사는 작가라기 보다는 ‘墨仙’이라는 말로 그간 먹과 술과 글에 빠져 일관되게 작업해 온 역정과 그 성과를 평가하고자 한다. 취묵헌 인영선 선생은 바로 먹의 향기와 술의 향기와 글의 향기를 안으로 삭혀서 글씨의 향기로 꽃피워 낸 작가라고 생각된다. 연구실 한켠의 마란쯔엠프를 통해 울리는 베토벤 곡을 들어면서 진정하게 서예를 즐기며 爲己之學을 추구하는 선생의 모습이 서설속에 오브랩된다. 

 

정태수
 
 위 글은 '이목서회' 카페에 올린 글을 퍼왔다. 
 

    

 

  

  아래 그림은 지난 1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개최된 "글과 글씨와 그림이 좋은 천안사람" 인영선 개인전에 전시된 사진(이보 님 카페에서 옮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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