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음악의 연주와 해석의 문제
'정격연주 (원전연주)'라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대개는 고음악을 당시 악기와 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바탕에는 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하는 것, 또는 당시의 소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연주가 정격의 연주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내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과연 당시의 음악 소리를 그대로 재현할 수는 있는가?
바흐의 바이올린 음의 연주와 해석의 문제를 다룬 다음의 글을 읽으며 한 번 생각해보자.
(이 글은 최은규씨가 객석에 썼던 원고 중에서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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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음악을 공부할 때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해석본(edition)에 따라 아티큘레이션이나 악상기호, 심지어 음정까지도 다르게 나타나있다는 점에 있다. 특히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악보의 경우는 해석본들 간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악장인 샤콘느의 경우, 길게 지속되는 아르페지오(펼친 화음) 부분에서 바흐는 단지 코드만 적어놓고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라는 지시만을 남겼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음형으로 연주 해야할지는 연주자에게 맡겨놓았다. 따라서 현대의 여러 해석본에서 이 부분을 찾아보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바흐의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바흐의 자필 악보 뿐만 아니라 여러 해석본들 간의 차이점과 그 해석의 타당성을 검증해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떤 해석이 옳고 그른지를 정확하게 판단해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바흐가 활동하던 당시의 연주 관행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임시 기호의 용법이나 리듬의 처리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다음주법(multiple stop) 의 문제일 것이다. 다음주법이란 여러 개의 음들이 조합된 코드를 동시에 소리내는 주법으로, 기본적으로 선율 악기인 바이올린으로 구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두 개의 음을 한 번에 소리내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지만, 세 음이나 네 음 코드의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1820년에 뚜르뜨(F. Tourte)에 의해 확립된 현대의 바이올린 활은 일자로 곧은 모양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아무리 활을 짓눌러 보아도 서로 각도가 다른 세 개나 네 개의 현을 동시에 울려줄 수가 없다. 설사 세 현 이상을 동시에 진동시켰다고 해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나고 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삼중음이나 사중음을 연주할 때는 먼저 낮은 두 현을 울려주고 재빨리 활의 각도를 꺾어 높은 음을 연주하여 코드의 효과를 낸다.
그렇다면 바흐가 살았던 그 시대에는 도대체 이러한 코드를 어떻게 연주했을까? 음악학자나 연주자들 사이에 의견 차이를 보이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바흐 시대의 활 모양으로 미루어 보아 그 시대에는 다성 코드가 마치 오르간 처럼 동시에 울려졌으리라고 가정할 수 있다. 당시 독일에서 사용되던 활은 이태리의 활에 비해 훨씬 둥글게 구부러진 모양이었다. 또한 조임 나사 대신 엄지 손가락의 압력을 이용해서 활털의 장력을 조절했기 때문에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활털의 긴장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빠른 패시지에서는 활털을 조여 또렷한 음을 얻어내고, 다중 코드를 연주할 때는 활틀을 느슨하게 풀어서 여러 음을 동시에 울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현대에 들어와서 바흐의 본래 악보대로 충실하게 연주하기 위해 '바흐 활'(Bach-bow)이라는 것이 고안되기도 했다.
그러나 바흐 시대의 연주 관행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다성 코드가 아르페지오로 연주되었다는 학설이 더 유력해지면서 이러한 시도는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의 활을 사용해도 역시 다성 코드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소리로 동시에 울려주기는 어려우며, 바흐 시대의 악보는 오늘날과 같이 악보에 표시된 바가 연주될 소리 그 자체를 정확하게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성 코드를 악보에 써있는 그대로 오르간 소리 처럼 동시에 소리내는 것은 당시의 연주 관습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흐 음악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
그러나 연주자들이 자신의 음악적 가치관에 따라 어떤 해석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나름대로 일관된 논리를 지닌다면 설득력있는 연주를 들려 줄 수 있다. 따라서 상반된 연주라 할지라도 각기 훌륭한 연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19세기에 활동했던 노르웨이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Ole Bull)과 20세기의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지기스발트 쿠이켄(Sigiswald Kuijken)은 활동한 시기도 다르고 해석도 상반되지만 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준다. 불은 바흐의 악보를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의 다성 코드들을 오르간 처럼 동시에 울려서 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반면에 쿠이켄은 다성 코드들을 모두 아르페지오로 처리할 뿐만 아니라 주요 코드들 사이의 빠른 음표들도 그 음악적 성격에 따라 장식음 처럼 연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고음악 연주 관행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바흐 시대의 소리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 두 사람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들려주는 소리는 너무나 다르지만, 둘 다 바흐의 음악을 당시의 소리로 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기반에 서있다. (글:최은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