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Classic

남편 모차르트를 잃은 고통 - 콘스탄체 모차르트의 편지 中

凡石 2009. 4. 27. 21:39

남편 모차르트를 잃은 고통 - 콘스탄체 모차르트의 편지 中

 

- 황제 레오폴트 2세께 -


<-- Mozart's wife Konstanze Weber

 

전하!
저는 불운하게도 남편을 잃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도 철모르는 두 아들과 함께 가난과 궁픕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게다가 저를 더욱 곤궁하게 하는 것은 10년 근속을 하지 않으면 연금이 지불되지 않으므로, 죽은 남편앞으로 보조금이나 하사금이 한푼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저는 오로지 전하의 자비와 도움이 필요한 자에 대한 전하의 자비로운 사랑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미천한 신분과 가문이지만 저희에게 베풀어주실 황실의 온정이 전혀 무가치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드리도자 몇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저의 죽은 남편이 빈에 체류하는 동안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내 보일 기회가 한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회만 주어졌더라면 그는 자신의 장래성을 충분히 발휘해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결과적으로 가족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버렸습니다.

둘째는,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다른 곳에서 부를 좇기는 쉬웠을 것입니다. 그처럼 자주 여러 곳에서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일치감치 수락했더라면 자신의 가족을 호의호식시켜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로지 이곳의 황궁에 봉사함으로써 자신의 명성을 드날리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셋쩨는, 그가 지닌 많은 가능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자신의 보기드믄 재능을 발판으로 삼아 돈을 벌고자 했다면 충분한 그럴 시간이 있었을테고, 남편이 그러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에 이른 것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이유로 남편은 자신의 상속인에게 음악가들의 미망인과 유자녀를 위한 협회에서 제공하는 적은 보조금조차 물려줄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넷째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어떤 점으로나 장래가 가장 촉망되는 때에 가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성 슈테판 성당에서 카펠마이스터로 복귀하라는 요청이 있었고, 죽기 며칠전에는 헝가리 귀족 집안에서 1,000프랑의 기부금을 내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암스테륻담에서도 많은 돈을 줄테니 1년에 몇 핀 정도의 곡만 작곡해달라는 청이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온몽을 던져 황궁의 자비심과 곤궁한 사람에게 베푸시는 자애로움에 대고 간청드립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 자비를 필요로 하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전하께서 저희 철모르는 두 아들에게 황궁의 보조금을 내려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것만이 제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엎드려 드립니다.

1979년12월11일
사망한 왕실 및 실내악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미망인, 콘스탄체 모차르트 올림.

                   Mozarts sister Ninnerl -->

 

*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에 사망했는데, 장례를 치를 돈이 부족해서 공동묘지에 묻혔다. 친구 몇명만이 상여로 따라갔으나, 이들조차도 날씨 때문에 중간에 돌아가 버렸다. 그의 유해가 묻힌 정확한 장소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