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09.12.19)는 평가업무 관계로 정읍에 있는 모 전기학원으로 출장을 가는 날이다. 아침 9시부터 평가업무가 시작이니까 옛날 같으면 서울에서 전날 내려가야 하나, 요즈음은 세상이 좋아져 KTX를 타면 당일 새벽에 내려가도 된다.
정읍 가는 기차는 신용산역에서 05시 20분에 있다. 새벽 3시 30분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내가 차려 준 아침 밥을 먹고 나니 04시 30분이다. 밖에 나가보니 어느새 딸이 자가용을 갖고,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매 번 출장 때마다 '내가 택시타고 갈테니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타일러도 소용이 없다. 아내 말에 의하면 '대주께서 새벽 일찍 일어나 멀리 출타하는데 집에 있는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가족끼리 새벽 드라이브를 하는 셈 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아내가 운전을 못 하니까 딸을 깨워서 운전을 부탁한 것이다. 아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딸은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일찍 일어나 수고를 하는지 정말 미안하기 짝이 없다.
이 모든 것이 가정의 화목을 다지는 하나의 본보기라고는 하나,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 일을, 아내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딸이 모는 차는 한강변에서 불어오는 냉냉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동작대교를 지나 신용산역에 도달하였다. 그 때 가 04시 50분이니까, 너무 일찍 온 것이다. 그러나 늦어서 조바심 하는 것보다는 일찍와서 기다리는 편이 한결 낫다.
열차에 올라 타, 잠을 청하기 위해 음악이나 들으려고 MP3를 가방에서 꺼냈다. MP3에 담겨진 음악은 클래식(교향곡, 협주곡, 성악곡)을 비롯하여 팝, 재즈, 가곡, 가요, 민요 등으로 장르가 다양하다. 잠을 청하는데는 아무래도 끈끈하고 흐물흐물한 '재즈'가 제격이다. 내킹콜의 Too Young, Mona Lisa 의 감미로운 노래가 내 귓전을 울린다. 잠에서 깨어나니 어느새 정읍역이다.
이른 새벽 차창으로 내다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참으로 서울서는 보기 어려운 설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온 산하가 하얀 눈으로 새 하얗게 변했듯이, 어둠침침하던 내 마음도 어느새, 새 하얗게 변해 산뜻하기만 하다. 이런 설경은 본 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몇 십년 전 설악산이나 한라산에 갔을 때 보고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모처럼 설경다운 설경을 보니 속이 후련하고 상쾌하다.
업무를 마치고 정읍역에 다달으니 어디선가 흥겨운 농악소리가 들려온다. 정읍시립 농악대의 단원들이 제각각 풍자스런 모습으로 치장을 하고 풍물 장단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치고 있다. 나는 이런 토속적인 우리의 가락과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이며 흥이 솟구치는 버릇이 있다. 오늘 이 행사는 이 고장의 명품이라고 하는 샘골 먹시(검은 곶감) 품평회가 이곳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경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나이기에, 흥겨운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마구 찍어댄다. 이런 풍경 역시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 오후 4시 20분 신용산역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늘 기분은 그야말로 'Nice day"라고 할 정도로 유쾌한 날이었다. 아마도 몇 년은 더 젊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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