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10.11.12)에는 충남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소재 선영에서 사맹공(휘 自海) 자손들이 모여 시제를 올렸다. 아침 8시 반 쯤 고속버스를 타고 온양에 도착하니 강우식 회장이 차를 갖고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열시 반쯤 선영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일가들이 오셔서 산소를 둘러 보기도 하고, 시제를 준비한 종가댁에서는 제수를 나르고 진설하느라고 분주하다.
일가들을 보니 처음 보는데도 웬지 모르게 정이 간다. 이것이 바로 한 핏줄이라는 혈연관계에서 오는 남다른 정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이 나 보다 나이가 많으신 어른들인데, 통성명을 하다 보니 내가 항렬이 높은 편이라서 좀 민망스럽기도 하다.
이 선영에서 제일 높은 사맹공께서는 진주강씨 중시조인 은열공(휘 民瞻)의 10세손으로서 아들 휘 英老(당진공, 11세), 손자 휘 希呂(진사공, 無后, 12세) 휘 希尹(감찰공, 12세)과 휘 希曾(선전관, 12세)을 두셨다. 선영에는 이 분들의 묘소(손자 휘 希呂 묘소는 없음)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차적으로 가지런히 잘 가구어 져 있고, 시제를 모시는 제단은 별도로 마련되었다.
이날 참석한 종원 대부분은 사맹공의 둘째 손자이신 希尹(감찰공, 12세)의 후손들이고, 나와 강회장만 사맹공의 둘째 손자이신 휘 希曾(선전관, 12세)의 자손이다. 그만큼 휘 希曾 조상님의 직계 자손들은 세가 약하다는 증거인데 그런면에서 그들에게 약간 꿀리는 기분이 들어 사기가 떨어진다. 더구나 선전관 조상님의 산소도 그 곳으로부터 약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홀로 모셔져 있고, 묘역도 제대로 관리가 않되어 후손으로서 보기가 민망 할 정도다.
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사맹공부터 시작하여 당진공 감찰공 선전관 순으로 잔을 올린다. 당연히 선전관 조상님에 대한 초헌은 우리 측에서 올려야 되는데 강우식 회장이 집사를 맡아 내가 잔을 올렸다. 조상님 앞에 꿇어 앉아 잔을 올리는 심정은 이루말 할 수 없이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직계 자손들이 많이 참석하지도 못하였을뿐더러, 번성하지도 못한 점에 대해 그저 송구스럽기만 하다.
다음 부터는 우리 측 종원들이 대거 참석하여 외롭게 홀로 떨어져 계신 선전관 조상님의 영령을 위로하고, 조금이나마 그 분의 위상을 드높여야 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허물어져 가는 봉분도 보수를 하고 묘역 주변의 조경도 좀 더 신경을 써야 될 것이다.
시제가 끝나고 재실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종중회의가 있었다. 종중회장님의 인사말씀과 총무님의 경과보고가 있었는데, 종원 모두가 종중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특히 총무님의 관심과 열의는 더욱 대단하였다.
사맹공(휘 自海, 10세)의 묘소
당진공 (휘 英老, 11세)의 묘소
감찰공 (휘 希尹, 12세)의 묘소
선전관 (휘 希曾, 12세)의 묘소
'[자유게시판] > 생활 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녁시간을 동료들과 함께 즐기면서. (0) | 2010.12.06 |
---|---|
덕진 조상님의 시제를 모시면서. (0) | 2010.11.28 |
깊어 가는 현충원의 가을 풍경을 담다. (0) | 2010.11.07 |
육구회 모임에서. (0) | 2010.11.05 |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면서. (0) | 2010.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