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0.10.7)은 일요일이다. 집에서 TV를 보니 내장산 단풍이 절정을 이루어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단다. 비록 내장산은 못 가더라도 지척에 있는 현충원이라도 가서 깊어 가는 가을 단풍을 보기로 마음 먹고 집을 나섰다.
경내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와서 화사한 단풍을 구경하며 한가로히 산책을 즐기고 있다. 다정히 손잡고 다니는 아베크족도 있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도 있고, 동네 아주머니들도 있고, 장애인들도 단체로 소풍을 나왔다. 또는 나같이 혼자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도 꽤 있다. 이들 카메라는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을 취미 또는 전문으로 하는 분들인 것 같다. 그들 앞에서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폼을 잡는 것이 좀 민망하다.
안개가 뿌옇게 끼어서 그런지 고운 단풍이 화사하지가 않다. 날씨가 맑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좀 아쉽기만 하다. 이런 날은 사진도 잘 나올 수가 없다.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어느 작가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가 찍고 있는 장면을 이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볼까 하는데 한 수 알려 주실 수 있나요?" 하였더니 씩 웃으시면서 "그것 갖고는 않되죠"라고 단호하게 말씀 하신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어찌 휴대폰으로 작품사진을 찍어 보겠다고 덤벼 든, 내 자신이 너무 과문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그 분한테는 무례한 짓이라고 여겨, 그 분의 작품 활동을 옆에서 지켜 보기만 하였다. 다 찍고 나서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아셨는지,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나에게 사진 잘 찍는 기술 몇가지를 알려 주신다. 자기가 오늘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한컷 한컷 보여 주면서, 어느 부분이 잘 되고 어느 부분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지적 해 주신다.
사진은 광학예술이라고 하시면서 빛이 사진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고 말씀하시면서, 사실 오늘 같은 날은 좋은 사진을 기대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나마 내일 비가 오면 날씨가 추워져 이렇게 고운 단풍이 시들어서 볼 품이 없기 때문에, 오늘 일부러 나오셨다는 것이다. 연세가 아마도 80은 훨씬 넘으신 분 같은데,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열의를 갖고 계신 것이 감명 깊어, 몇가지 궁금한 것을 여쭈어 보았다.
사진 프로 작가신지 아니면 취미로 하시는 것인지에 대해 여쭈어 보았더니, 젊었을 때는 활동을 하였는데 지금은 몸이 아프셔서 제대로 못하신다고 하신다. 내가 보기는 그분이 갖고 있는 촬영 장비나 외모의 치장으로 보아 전문 사진 작가로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젊어서는 아주 왕성한 활동을 하였던 분 같다. 수동식 라이카 카메라에 독일제 망원렌즈를 갖추고 있어, 어떤 카메라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지금도 이 기종을 당할 기종이 없다고 하면서 최고의 장비라고 한다.
감히 프로 작가에게 내 휴대폰을 드리면서 사진 한 컷을 부탁 드려도 되느냐고 하였더니 선뜻 응 하신다. 단풍 앞에 서라고 하시더니, 앞으로 더 나와라, 옆으로 더 가라 주문이 많으시다. 찍고 나서 나에게 설명을 하신다. 붉은 단풍은 녹색과 대조시켜야 사진이 선명하다는 것이다. 사실 거기까지는 몰랐는데 오늘 중요한 것을 배웠다. 바로 아래 사진이 오늘 그 작가 할아버지가 찍어 준 사진이다. 좋은 배경에 촬영기술은 최고인데, 인상이 별로여서 사진이 마음에 안든다.
경내의 단풍은 지금이 한 철이다. 은행나무는 양지 바른 곳은 완전히 노랗게 물들었고, 단풍나무와 벗나무는 빨강색 주황색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치 어느 화가가 수채화 물감을 뒤범벅하여 솓아 부은 것처럼 현란하기 짝이 없다. 한 참을 넋을 놓고 쳐다 보니 내 마음마저 붉게 타오른다.
기상 예보에 따르면 내일 중부지방에 비가 내린단다. 비가 오고 나면 자연히 날씨가 추워지고 서리가 내릴 것이다. 곱고 고운 단풍이 된서리라도 맞으면 언젠가는 추풍낙엽이 되어 앙상한 가지만 남을 날도 머지 않았다.
단풍과 낙엽을 인간의 생애로 비춰 보면, 나이 60에서 70은 단풍이라고 볼 수 있고 나이 70이 넘으면 낙엽의 인생으로 볼 수있다. 물론 전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내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나무나 사람이나 청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 들면 무력해 지기 때문에 비유한 말이다. 그나마 우리 같이 60대 초반은 단풍으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고운 단풍'격이다. 낙엽이 되기 전에, 여러 사람들이 찾아 줄 때, 우리는 앞으로의 삶을 관조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아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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