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Classic

New York Philharmonic Episode

凡石 2009. 4. 27. 21:57
New York Philharmonic Episode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일년에 3번 정도 투어를 한다. 두 번은 해외 투어고 한 번은 국내(미국) 투어다. 올해도 어김없이 7월에는 국내 투어를, 그리고 9월과 11월에는 해외 투어를 다녀왔다.
 9월에 있었던 해외 투어는 5개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13일 동안 열한 번 공연했으며, 11월에는 5개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11일 동안 아홉 번의 공연을 독일, 스위스, 네델란드, 벨지움,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주요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고, 최고의 호텔에서만 숙박하는 뉴욕필의 투어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2002년과 2004년 우리나라에 투어를 왔을 때에도 서울에서 가장 비싼 호텔 중 하나인 메리어트에 묵었으니, 투어를 같이 다니지 않는 제 3자의 눈에는 투어가 럭셔리 관광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어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화려하고 편안한 것일까? 130명의 단원과 스태프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이 투어의 뒷모습은 어떨까?
 한 번 투어를 나가면 보통 2주에서 2주 반가량 걸리며, 이틀에 한 번 간격으로 다른 도시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투어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는 확률이 거의 100%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투어를 가기 전에 스태프들은 투어에 관한 작은 책자를 만들어 단원들에게 나누어준다. 이 책자 안에는 공연장과 호텔의 주소 및 전화번호, 리허설 시간과 순서는 물론, 심지어는 호텔에서 공연장 가는 버스 시간까지도 나와 있다. 즉 이 책자 대로만 일이 진행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 많은 단원들이 움직이는 만큼 문제는 언제나, 어디서나 복병처럼 숨어 있게 마련이다.

 필자는 지난 9월과 11월 투어 기간 동안 발생했던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몇 가지 나열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가방 도난 사건. 투어의 둘째 날,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어난 일이다. 공연을 마치고 호텔에 오니 밤 11시였고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에 11시 반이 넘어서 들어갔다. 가방을 의자 바로 옆에 놓고, 음식을 주문했다. 필자를 가운데로 두고 양 옆에는 소위 말하는 몸짱 남자 둘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가방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얼마 후, 무의식적으로 가방을 확인하려고 했을 때 이미 가방은 의자 옆에 없었다. 
가방 속에는 여권, 사진기, 지갑 등 모든 귀중품들이 들어 있었다. 이를 어쩌나.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는 당황한 필자를 안심 시키며 호텔 매니저에게 이 상황을 보고하고, 새벽 2시에 함께 경찰서로 가서 신고하는 등, 친절함을 베풀었다. 그리고 임시여권을 받을 때까지, 모든 직원들 및 단원들이 세심한 신경을 써주었다.


투어를 다니면 밥 먹을 시간조차 제대로 없을 정도로 바쁜데, 필자 때문에 직원들의 할 일이 한 가지 더 늘었다는 생각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아무 불평하지 않고 성심껏 도와주는 직원들. 이렇게 일하는 것이 서로 아끼며 일하는 것이구나…. 가방을 잃어버려 당황스러운 가운데에도 동료들의 따뜻한 배려가 가슴에 깊게 와 닿았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공항에 만기된 여권을 가지고 나타난 단원의 경우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수이지만, 그 단원은 물론 스태프들까지도 긴장해야 했다. 다행히 그 단원은 공항에 일찍 왔었기에 다시 집으로 가서 유효한 여권을 간신히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세 번째로는 단원이 악기를 안 가지고 온 사건이 발생했다. 이 단원은 더블 베이스 주자였다. 그는 악기를 당연히 악기 트렁크에 챙겼다고 생각했었지만(더블 베이스는 악기 자체가 크기 때문에 트렁크에 넣어 화물칸에 싣는다), 막상 리허설 때 악기 트렁크를 열어보니, 트렁크에 악기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당황스러운 사건이었지만 마침 공연장이 유럽의 대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베이스를 빌릴 수 있었다. 그는 투어 내내 악기를 빌려서 연주해야 했다.
 여기서는 세 가지의 에피소드만 들었지만, 그 외에도 소소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긴장하게 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뉴욕 필하모닉의 투어는 정말 바쁘고 고되다. 13일 동안 열한 번의 공연을 한다는 것은 거의 매일 공연을 한다는 뜻이다. 즉 아침에 한 도시를 떠나 두 시경 다른 도시에 도착하면, 6시에 공연을 하러 다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관광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이동하는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일쑤이고, 낮에 잠깐 비는 몇 시간조차도 호텔 방에서 밀린 이메일을 확인하느라 바쁘다. 단원들은 호텔방에서 연습을 하거나 저녁 공연을 위해 컨디션을 조정하느라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11월 투어 때는 연속해서 3일간 룸 서비스로 식사를 해결했다. 호텔 방에서 할 일이 많아 밖에 나가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어를 다니면서 관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껏 경험하는 것은 이 호텔 매트리스가 다른 호텔 매트리스보다 좋구나, 또는 화장실 비누가 더 부드럽구나 하는 정도다. 솔직히 말하면 투어 다니는 동안 체력의 한계를 느낄까봐 평상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체육관을 찾곤 하지만 나는 일기 위해 부지런히 운동을 한다. 
불평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힘든 투어 일정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콘서트게보우 공연장에서의 공연이었다. 말로만 듣던, 사진으로만 보던 공연장에 직접 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이 공연장은 정말 훌륭했다. 공연장 안의 장식도 18세기풍으로 꾸며져 웅장했는가 하면, 음향 또한 완벽했다. 태어나서 이런 음향을 들어본 것은 처음 이었다. 아주 세밀한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공연장에서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말러 5번을 듣다니!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단원들이 함께 점심을 먹고, 음악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라니! 정말 꿈만 같았다. 뿐만 아니라, 투어를 가서 공연을 할 때마다 공연은 항상 매진이다. 뉴욕필하모닉 공연을 보면서 관객들은 열광한다. 필자는 열광하는 관객들을 보면서, 좋은 음악을 세계 여러 나라 사람에 들려주는 연계자 역할을 있다고 생각하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이런 순간순간들이 힘든 투어를 보람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스태프들이 힘들게 일하는 만큼 투어는 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고,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기쁨도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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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원들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1842년 창단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오케스트라이다. 오래된 역사에 맞게 치열하고 엄격한 경쟁을 통해 뽑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한 명의 비올라 수석을 뽑기 위해 5번의 공개 오디션을 해야 하였을 정도이니 말이다. 뉴욕필하모닉은 106명의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106명의 최고의 단원들을 관리하기란 과연 어떨까? 이번 인터뷰에서는 뉴욕필하모닉 Personnel Manager Carl Schiebler를 만나 인터뷰 하는 기회를 가졌다.

박선민 | 뉴욕필하모닉 퍼스널 매니져라는 직책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Carl Schiebler |퍼스널 매니저라는 직책은 단원들과 관련된 모든 사항들을 관리하는 자리입니다. 제 업무는 크게 행정적인 일과 리허설 및 공연을 관리하는 업무로 나뉩니다. 행정적인 면이라면-오디션, 엑스트라 연주자를 구하는 것, 단원들의 월급을 주는 일 등이 포함됩니다. 리허설과 공연을 관리하는 업무는 방송 녹화 공연, 투어 공연, 야외 공연, 라디오 공연 등 단원들이 연주하는 모든 공연을 관리하는 일도 포함되죠. 이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은 단원들이 연주를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지요. 단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이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되게 말입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일하게 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저는 1985년부터 뉴욕필하모닉에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내년이면 뉴욕필에 몸담은지도 20년이 되는군요. 뉴욕필하모닉의 퍼스널 매니저로 일하기 전에는 St. Louis오케스트라에서 호른 주자로 24년간 연주를 하였고, 1975년에는 St.Louis 오케스트라의 퍼스널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뉴욕필의 제안을 받아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뉴욕필에 몸담으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글쎄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일하는 매 순간이 기억에 남는 부분이 아닐까요. 저는 레오나르도 번스타인, 주빈 메타, 쿠르트 마주어, 로린 마젤 등 여러명의 훌륭한 지휘자와 함께 일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순간들은 저에게 소중한 기억들입니다.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잘 하고 있는 매 순간이 제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오케스트라는 많은 연주자들이 함께 모여 화음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독주 연주자들의 매니지먼트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을 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이 두 가지는 정말 다른 직업입니다. 오케스트라 퍼스널 매니저는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스케줄, 즉 리허설을 포함한 모든 공연, 레파토리를 짜는 것, 투어일정을 잡는 것, 엑스트라를 구하는 것, 무대를 점검하는 것 등을 관리하여야 합니다. 반면에 독주 연주자 매니징은 그들의 레파토리와 투어일정만을 관리하는 것이니, 연주단체의 퍼스널 매니져는 단체의 관리, 살림 등에도 관심을 기우려야한다는 점이 다르겠죠.

그간 수많은 연주자들을 겪어오셨을 텐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예를 들면 유난히 정이 간다던가, 유달리 골치아프게 했던 사람이 있을텐데요..

퍼스널 매니저의 철학은 연주자들을 서로 비교하지 않는 것이 이 질문의 답이 되겠군요.

요즘 젊은 연주자들을 예전과 비교해 볼 때,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젊은 연주자들은 아주 휼륭한 기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뉴욕필하모닉의 오디션을 통과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기에 더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단원들이 입단하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면은, 예전에는 오케스트라 월급만 가지고는 생활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원들이 여러 곳에서 일을 하여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시간을 투자 할 수가 없었지요. 다시 말해 그런 사치를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젊은 연주자들은 오케스트라 월급만 가지고도 생활이 되어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자기를 위하여 시간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아는 둥근 성격을 지닌 것 같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하셨을텐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인지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야외 공연을 했었습니다. 아주 추운 날씨였고, 무대에 난방장치를 틀고 연주를 할 때였습니다. 야외 공연이기에 수백만의 관중들이 공연을 보았었죠. 그 때 핀 소리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의 조용한 관람 태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몇 번이나 방문하셨는지요.

글쎄요.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겠지만 5번 정도는 한 것 같습니다.
한국은 방문할 때마다 빠른 산업화가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요. 제가 한국의 지방도시를 방문하는 것이 이번 10월이 처음인데, 지방도시를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공연은 엑스포 때였던가요, 임시 공연장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 스탭들은 임시 공연장이니 이해해 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막상 연주를 해 보니, 음향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저희는 음향이 훌륭한 공연장이니 절대로 철거하지 말라고 했었지요. 하지만, 지어진 목적이 임시 공연장이어서 철거해야만 한다고 하더군요. 그 공연이 특이하게 기억에 남네요.

다른 오케스트라들간의 모임이 있는지요?

American Symphony Orchestra League(ASOL)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이 조직은 오케스트라를 도와주는 조직이지요. 뉴욕필과 같은 큰 오케스트라는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 않지만, 작은 오케스트라들에서는 프로그램 만드는 법, 포스터 만드는 법,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법 등의 자문을 받고 있습니다.

퍼스널 매니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필요한 소양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음악과 음악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합니다. 또한 정직하고 모든단원들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만 있다면 아주 쉬운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만일 이 자리가 복잡한 일을 해야 하는 자리라면 제가 하지 않았겠지요. (웃음)

더 추가적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저는 뉴욕필이 지방에서 연주하는 아주 작은 공연이든, 링컨센타에서 하는 공연이든, 어느 공연 하나 소홀히 하는 것 없이 최고의 수준으로 연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실 상 뉴욕필은 모든 공연을 최상의 수준으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관객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평등하기 때문이지요.

글,사진 | Chris Lee · 박선민

이 글을 쓴 박선민은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에서 근무를 하고 현재 뉴욕대 예술경영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오는 5월 졸업을 앞두고 뉴욕 필하모닉 공연기획팀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다는 낭보를 전해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