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Classic

지휘자와 그 역할

凡石 2009. 4. 27. 21:56
지휘자와 그 역할

오늘날, 스타 지휘자는 음악과 관계된 생활을 말할 때 굉장한 찬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지휘자는 음악인으로 구성된 군대의 수장, 최고의 악기로 연주하는 비르투오소적인 연주가, 독재자, 작곡가의 대변자 또는 일부 음악인들의 말처럼 작곡가를 사칭하는 사람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지휘자에 대한 이러한 찬사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음악인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몫이기도 하다. 이러한 찬사에서 연상되는 것은 권력이다. 지휘자가 가장 찬사를 많이 받고 있는 것도 또, 그로 인하여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것도 대부분 바로 이 권력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 지휘자, 굳이 직업을 구분하여 말하자면 지휘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 지휘자는 공연의 수준 및 연주자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며, 비교적 근래의 혁신적 발명품이다. 제 아무리 복잡다단한 음악작품일지라도 그 작품은 누군가가 박자를 넣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박자를 맞추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는 물론, 심지어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 또한 이따금 선율의 오르내림을 나타낼 음악감독이 필요로 했듯이 다성합창 공연에도 그러한 일례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증거에 따르면 이 지휘의 역할은 대개 수석 연주자에 의하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합창단이나 다수의 악기군이 있는 큰 건물주위에 여러 대의 성가대가 분산되어 있었을 때조차도 사람들이 선호했었던 것이다.


바로크 시대에 통주저음 연주자가 지휘자의 역할을 맡아서, 기본 박자와 속도의 변화를 알려주었다. 그밖에도 다른 예술적 결정요인이 또한 결부될 수 있는데, 특히 작곡가 자신이 지휘를 맡을 때 지휘의 역할이 필요했다. 오페라의 경우, 연출자 겸 지휘자는 자주 성악가를 지도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 이는 성악가들이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이지만 음악적으로 악기 연주자만큼이나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향악단에서의 바이올린 연주자의 부상과 현악기가 지배적인 악기가 됨으로 해서 지휘의 역할을 제1바이올리니스트가 맡게 됨으로 해서 오늘날 제1바이올리니스트는 '리더'나 '악장'으로 불리 운다.

 

박자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그의 활 또는 심지어 자신의 악기로 박자를 저음으로써 나타내었다. 물론 다른 해결책이 있기는 있었다. 가령, 장 밥티스트 륄리는 큰 막대로 바닥을 쿵쿵 울렸었다. 불행히도 륄리는 어느 날 이러한 지휘를 하다가 자신이 치명적이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륄리 이후 프랑스인 지휘자들이 이 위험하고 또한 시끄러운 지휘법을 채택하였고, 19세기초까지도 이 지휘법은 계속되었다.
지휘자가 교향악단의 전면에 서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 시대 무렵이었다. 베토벤이 쓴, 크레센도, 디미뉴엔도나 다른 표현 기호법을 나타내는 다채로운 방법에 관한 기록을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관객을 등뒤로 하고 복잡한 지시사항을 손, 막대 또는 돌돌 말은 종이 등으로 지휘하는 방법이 나타나있다. 이러한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음악인들은 점차 예술적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음악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좀더 시간이 필요하였다.


최초의 지휘자는 스포어, 멘델스존, 베버, 베를리오즈 그리고 바그너 같은 작곡가들이었다. 바그너는 지휘에 있어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그의 엄청난 분량의 글 중 하나가 '지휘에 관하여'로 불리는 논문이다. 이 글에서 바그너는 어떻게 지휘자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구축되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바그너에 의하면, 지휘자는 올바른 템포를 알아내야만 할 뿐만 아니라, 지휘자는 그 템포를 연주자 임의로 연주하는 루바토, 악첼레란도, 점점 느리게 등을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정확하다는데 머물러 생기가 없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선율이 악기에서 악기로 이어질 때 지휘자는 그 흐름이 하나의 연속적인 선으로 들리도록 진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燭恝?생각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지휘자는 단순히 훈련교관이라든지 동료중에서 가장 잘한다하는 정도로는 통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지휘자는 해석자이어야 했다. 예술적인 성공은 지휘자의 상상력과 지휘자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바그너의 지휘자관에 입각한 인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지휘자로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 지기 시작하였다.


20세기 들어와 최고로 중요한 2명의 지휘자가 탄생하였다. 이들은 음악에 있어서 앤티테제로서로도 이따금 언급되기도 하는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바로 그들이다. 토스카니니는 흔히 고전주의자로 불리는데, 정확성과 힘찬 표현에 치중한 반면, 푸르트뱅글러는 바그너가 강조하였던 좀 더 긴 선율과 템포의 물 흐르는 듯한 흐름의 표현을 고수하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토스카니니는 또한 위대한 지휘대의 독재자로서 인식되어 있으며, 연주자에 대한 불같은 노기와 혹독한 비판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휘자는 현재 자신의 독특한 해석 스타일 및 이상 그리고 구체적인 교향악단 사운드에 따라 주목받는다. 똑같은 교향악단이더라도 2명의 다른 거장 지휘자 밑에서는 완전히 다른 소리는 낸다고 보았다.
지휘자에 대한 존경이 너무 지나친 존경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관객과 교향악단원은 폭넓게 다양한 대답을 내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휘자가 심지어 작곡가 보다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고, 위대한 작품이 단지 괴물같은 이기주의자를 위한 개인적인 능력을 펼쳐보이는 수단으로 보이는 이때 그 질문은 확실히 관객들이 요구하는, 그래도 예술성이 우선한다는 말에 대한 슬픈 말일뿐이다. 최근에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작곡가 겸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피에르 불레즈의 경우, 그의 사운드에 대한 주안점을 거부하고, 음악적 의미의 단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정격연주 운동 초기에는 그 주요한 목표중의 하나가 특히, 베토벤 시대의 음악연주에서의 경우에는 보다 집단적인 예술적 책임가을 되찾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로저 노링턴, 존 앨리엇 가디너와 같은 인물들의 부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카리스마적인 지휘자가 지금 이 시기에도 극히 중요하게 남아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위대한, 영감을 부여받고 불러일으키는 그 현상이 이제는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일반 관객의 불만도 제기되어 왔다. 소수 현대 교향악단의 악몽같은 연주일정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적절한 연습시간을 확보치 못하고 있음에 자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실제화가 되든, 아니든 간에 그러한 경향을 반전시킬 수 있는 가 여부는 두고 보아야 한다.

지휘자는 대개 역할에 따라, 그리고 나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부르고 있다. 크게 일정기간동안 교향악단에 붙박이로 붙어있는 상임과 떠돌이로 떠도는 객원지휘자로 구분할 수 있다.
미국 등지에서는 악단을 대표하고 음악적인 모든 책임을 지는 지휘자를 상임지휘자 혹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라고 부른다. 같은 역할을 하는 지휘자라 하더라도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수석지휘자라고 한다. 등급 매기기를 선호하는 일본의 경우는 꽤 복잡하다. 계관명예지휘자, 상임지휘자, 명예지휘자, 정 지휘자, 부 지휘자 등으로 등급을 두고 있으며 악단에 따라서는 예술감독 또는 음악 감독제를 채택하고 있는 곳도 있다.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상임지휘자와 수석지휘자의 역할에는 성격상의 차이가 있다. 수석지휘자가 지휘자의 음악적 역할을 강조한다면 상임지휘자는 음악과 행정적인 역할을 두루 갖춘 지휘자다.


그러나 악단의 음악정책을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수장을 일컫는 직책이라는 점에서는 양자간에 차이가 없다. 때문에 상임지휘자, 수석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악단의 지명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같은 지휘자가 상임으로 있을 경우 그 악단특유의 사운드를 창출할 수 있다. 뮌헨 필하모닉을 세계 제일의 오케스트라로 일궈놓은 지휘자 세르주첼리바다케가 전자의 대표적인 케이스라면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창출한 유진 올만디는 후자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지휘자의 음악적 사고의 향방이 오케스트라의 명암을 결정하게 된다. 단발 혹은 일시적으로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객원지휘자가 있다. 객원지휘자가 필요한 이유는 객원지휘자를 유치함으로 교향악단은 레파토리의 확장과 다양화를 꾀할 수 있다. 그리고 신선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지휘자에 그 교향악단 그 레파토리라는 식상함을 탈피하여 교향악단의 신선함을 유지하고 보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객원지휘자를 초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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