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Classic

[말러 이야기] 죽음은 절대로 산 자를 해치지 못한다

凡石 2009. 4. 27. 22:00

[말러 이야기] 죽음은 절대로 산 자를 해치지 못한다 - 조홍근

 

 

말러는 챠이코프스키와 더불어 서양음악사상 가장 감상적인 작곡가일 것이다. 둘 다 어렸을 때부터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고, 그 헤어짐의 아픔이 너무 어린 나이에 각인되어 평생을 따라다녔다. 이런 정신적인 상처는 주변 사물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든든한 신뢰를 갖게 하기 보다는 늘 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결국에는 헤어짐의 극단적 형태인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한다. 그래서 그는 죽음이 찾아 오기도 전에 먼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으며 사랑하는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죽음을 상상했다.

말러의 교향곡은 그의 인격의 모든 것을 낱낱이 쏟아 부어 빚어낸 가장 “인격적인” 산물이다. 6번 교향곡은 그의 나이 43세인 1903년에 작곡되었다. 그의 모든 교향곡 중에서 퇴로를 찾을 수 없는 가장 비극적인 음악이다.

 

곡의 분위기는 짙은 어둠이며 발작적으로 나타나는 평화로운 광경은 오히려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기괴한 소품으로 작용한다. 곡의 외형은 엄청나게 확대되어 목관이 20개, 금관이 19개 동원되었으며 cowbell, 첼레스터 심지어 쇠망치까지 동원되었다. 당시 신문의 카툰에는 창고 안에 말러가 희한한 악기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 “내 전기 호른(motor horn)은 어디 갔지?” 하고 외치는 풍자가 실릴 정도였다고 한다. 말러의 교향곡이 그렇듯이 연주시간은 한 시간이 넘지만 관현악의 운용이 투명하고 가곡적이라서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질주해 오는 죽음의 뚜벅거리는 발소리를 연상케하는 인상적인 모티브로 시작되는 1악장은 죽음의 공포와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점철된 악장이다. 평화를 희구하는 매혹적인 멜로디(알마 모티브: 2주제)가 행진을 막아 서지만 역부족으로 맥없이 휩쓸리고 만다. 공포가 최고조에 달할 때 갑자기 주변이 고요해지며 마치 산 너머 저 세상에서 들려 오는 것 같은 음조가 cowbell과 첼리스타를 통해 울려 퍼진다. 빛나는 현과 부드러운 목관에 의해 천국에 온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다시 행진은 준열하게 시작된다. 죽음의 행진이 승리의 행진으로 바뀌는 듯 하며 일순 분위기가 밝아진다. 그러나 그 것은 헛된 희망이었을 뿐, 분위기는 다시 어두워지며 공허가게 종결된다. 2악장 andante는 공포로부터의 안식을 애타게 원하는 말러의 마음이 담겨있다. 현의 빌로도 같은 공중활주와 무심한 듯 천연덕스러운 cowbell의 울림은 공포를 이미 내포한 고요함이다.

 

 아름다운 악상이지만 따라서 곧 이어 출현할 무언가를 예감케하는 불안을 느낀다. 3악장 Scherzo는 지평선 너머 구름이 몰려와 하늘이 어두어지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기괴하고 광포한 총주는 다가올 어둠을 예감한다. 30분에 달하는 4악장은 잔인한 운명의 힘에 굴복하는 말러 자신의 이야기이다. 전곡을 관통하는 어두운 분위기를 떨쳐버리려는 듯한 몸부림으로 하프와 바이올린의 천국같은 음률로 시작되지만 어두운 색조를 띤 저현악기와 관악기의 무거운 엄습은 비극적 결말을 예감케한다. 어두운 음률이 파편적으로 출현한 후 트롬본에 의한 송가와 같은 선율이 제시되고 분위기는 점점 밝아지며 회의적인 현악기의 선율마저 타악기에 의해 날려버리며 그로테스크한 행진을 시작한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의 행진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분위기이다. 이어 플륫의 밝은 선율과 금관에 의해 실려오는 귀에 익은 선율은 평화로움과 영혼의 고양을 느끼게 한다. 곡을 덮고 있던 어두운 분위기는 물러가고 천상에 온 것 같다. cowbell은 무심히 울려퍼지고 1악장 중간의 평화로운 천국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이올린의 높은 음이 익숙한 음률을 연주할 때 어두운 분위기의 첼로가 진입하고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분위기가 고양되어 터지기 직전 갑자기 엄청난 힘의 Hammer blow가 작열하면서 우리의 영웅은 쓰러진다. 파편화된 리듬이 지리멸렬하게 출현하다가 카운터 블로우에 다운 당한 복서가 제 정신을 차려 일어나 듯 악상은 어느덧 힘찬 행진곡으로 변화되어 승천하려 하지만 결정적 순가에 다시 강력한 Hammer blow 에 가격당하며 추락한다. 독주 바이올린이 도입부의 선율을 연주하면 잠시 정적이 흐른다. 다운당한 복서의 실신처럼 타악기와 현악기에 의해 이세상 것이 아닌 평화로운 음율이 저 멀리 울려퍼진다. 아마도 정신을 잃은 상태의 환상같은 분위기를 준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린 우리의 영웅은 보부도 당당한 행진을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영웅은 마침내 세 번째 Hammer blow에 의해 거목이 공중을 돌아 거꾸러지듯 쓰러지고 행진은 가장 비극적인 운명의 모티브와 함께 비극적으로 종말을 맞고 만다.

 

말러는 실제로 세 차례의 운명의 가격을 받게 되는데 첫 번째는 잘 나가던 지휘자를 사임하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랑하는 딸의 죽음이고 마지막은 그가 죽게 될 심장판막질환을 진단받게 된 일이다. 그는 미신적인 이유에서 세 번째 Hammer blow를 뺀 개정판을 냈지만 심부전으로 인한 죽음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악장의 순서도 바꾸곤 했는데 스케르쪼를 2악장에 두었지만 초연 이후에는 Andante를 2악장으로 두었다. 따라서 악장 순서와 세 번째 Hammer blow를 연주하느냐 마느냐가 지휘자에 따라 다르다. 말러 연주의 참피온인 바비롤리와 호렌슈타인은 훌륭한 연주를 남겼는데 사실 바비롤리는 나찌 치하와 전쟁통에 말러의 음악을 거의 잊고 있었던 독일인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에게 말러를 문자 그대로 “새롭게” 일깨운 지휘자이다. 1963년 바비롤리는 BPO와 함께 말러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하였고 그 것이 인연이 되어 다음 해에 말러의 5번과 9번 교향곡을 함께 녹음하게 되었다.

 

6번은 두 종류인데 영국의 Philharmonia orchestra의 스튜디오 녹음과 (EMI, LP, SLS 851) BPO와의 실황녹음이 있다(1966, mono, Testament, CD, SBT 1342). 실황이 훨씬 긴박감있고 어두운 기운이 뼈 속까지 베어있다. 스케일이나 디테일은 스튜디오 녹음이 훌륭하다. 러시아계 지휘자인 호렌쉬타인은 Royal festival hall에서 열린 말러 탄생 100주년 기념 교향곡전곡 연주회에서 9곡 중 3곡을 지휘했을 정도로 말러의 지휘에 정통하였다. Unicorn에서 출시된 1, 3, 6번은 명연주로 성가가 높으며 최근 BBC legend 시리즈로 출시된 9번과 현세의 노래 또한 빼어난 명연이다. Stockholm philharmonic orchestra와의 실황연주인 6번(Unicorn, LP, RHS 320-1)은 비극적 열정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연주이다. 세 번째 Hammer blow가 원본대로 재현된 연주를 듣고 싶다면 Charles Mackerras가 BBC philharmonic orchestra와 공연한 실황연주(BBC music magazine 2005년 2월호 부록)를 듣는 것이 좋겠다. 연주가 굉장히 다이나믹하며 녹음 역시 우수하다. 체코슬로바키아 음악 전문 지휘자로 시작하여 이제 대가의 경지에 오른 그의 물오른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말러와 같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말러가 죽음에 대해 신경증적으로 매달리고 강박적으로 괴로워하며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본 죽음의 공포를 날 것으로 외치고 동의를 구하고 있을 때 죽음을 다른 형태로 느끼고 표현한 한 사람이 있었다. 덴마크의 작곡가 닐센(Carl Nielsen)은 아마도 시벨리우스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작곡가일 것이다. 말러의 권위자인 Deryck Cooke 마저도 닐센의 교향곡 5번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인정했을 정도였다. 그의 교향곡 중 가장 위대한 5번을 작곡한 후 닐센은 조금 단순하고 악기들의 표현력을 그대로 살린 교향곡을 작곡하고 싶어했다. 이름하여 Sinfonia semplice였다. 그러나 그에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소위 현대음악의 전망과 과도한 실험성에 대한 절망이었다. 당시 새로운 음악의 실험을 위한 실험에 비판적이었는데 Bartok이 그에게 “닐센 선생님, 제 음악이 충분히 현대적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바르톡을 더 낮게 평가했다고 한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 음악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무엇이 영원할까? 이런 생각을 2악장 Humresque에 담았네..”라고 술회했다. 그러나 이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죽음이었다. 그는 6번 교향곡을 작곡할 즈음에 심각한 심장발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고, 얼마 있어 죽음이 그를 찾아올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이렇게 죽음 직전의 체험과 반응이 6번 교향곡에 녹아 들어있다. 글로켄쉬피엘의 맑은 울림으로 시작되어 관악기와 현악기의 천진한 선율로 마냥 이완되고 기쁘게 시작되는 1악장은 그러나 점점 어두움의 그림자에 침습되어 간다. 관악기의 불길한 선율을 바이올린이 이어 받으며 긴장감 넘치는 대위법이 전개된다. 긴장이 심해지며 모든 악기가 번갈아 가며 동일 음률을 신경질적으로 반복한다. 클라이막스의 폭발이 있기 전, 갑자기 주변은 조용해지며 도입부의 평화로운 선율이 얼굴을 비치면서 분위기는 긴장을 내포한 잠시의 소강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러나 평화로운 선율이 계속 대위법으로 펼쳐지면서 점점 시끄러워지며 모든 악기가 경쟁국면에 돌입한다. 긴장이 더 해가며 터질 듯한 지경에 이르러 귀를 찢는 금관악기의 사이렌이 울려퍼진다. 그가 경험했음직한 심장의 불규칙하고 강박적인 리듬이 글록켄쉬피엘의 불길하고 성가신 선율에 실려나온다. 이완되고 맑은 분위기에서 시작된 곡이 최고의 긴장과 비극적 분위기로 정점에 도달한다. 귀여운 애완동물 그뤼모에 물방울이 튀어 끔찍하고 무서운 괴물로 변할 때 느끼는 공포와 놀라움의 재현이다.

 

그리고.... 갑자기 긴 정적이 찾아오며 흩어졌던 악상의 조각들이 천천히 하나의 형태로 모아져 의지에 찬 악상이 되어 푸가를 타고 전개된다. 이 것은 마치 긴 밤의 악몽에서 깨어나 구름 한 점 없는 싱그러운 아침의 하늘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윽고 밝고 승리감에 찬 선율이 제시되며 푸가형식에 의해 전개되면서 비극적인 분위기는 소멸되고 낙관적인 분위기로 종결된다. 베토벤은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에서 푸가를 통해 불굴이 의지를 표현하였다. 닐센은 푸가라는 용매를 통해 비극과 절망감을 용해하여 증발시켰다. 2악장 Humoresque는 그야 말로 무조음악 같은 분위기로 악장 내내 파편화되고 무기질적인 선율이 단속적으로 제시된다. 전망도 방향도 상실한 현대음악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3악장은 전곡을 통틀어 가장 심각하고 악장이다 결코 1악장의 도입부처럼 이완되고 즐거운 분위기로 돌아갈 것 같지 않은 심각하고 무거운 선율로 시작되어 푸가형식을 빌려 이런 분위기가 심화 확장되며 바로 4악장으로 넘겨진다. 4악장은 주제와 변주인데 닐센의 Falstaff라고 생각한다. 밝기도 하며 어둡기도 하고 왈츠풍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변주들이 제시된 후 익살스런 팡파레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세상은 그런 것이고 너무 심각하게 비관하지 말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슬프면 웃지요라는 말을 떠올리는 이런 비극적 역설은 베토벤이나 브람스 등의 곡에서 볼 수 있는 높은 정신성의 표현이다. 죽음의 공포를 직시한, 그러나 말러처럼 과도한 낭만적 환상이나 피안의 갈구와는 다르게, 현실 그대로 받아들인 닐센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리스인 조르바나 철십자 훈장이라는 영화에서 제임스 코반이 연기한 독일군 부사관이 다른 예술형식에서 볼 수 있는 대응점이다.

 

세계 최초로 닐센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Ole Schimdt의 연주(Unicorn, 6LP, RHS 324-360; CD; Regis) 가 내겐 제일 명료하고 인상적이다. 덴마크의 지휘자 Thomas Jensen이 덴마크 라디오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녹음(dana cord, mono, 3LP, DACO 121-123)은 음질은 좋지 않지만 치열한 열정이 담겨있어 영혼의 연소감을 느끼게 하는 명연이다. 블롬슈테트의 두 차례에 걸친 EMI 시리즈(Danish orchestra, Chicago orchestra) 역시 수연인데 개인적으로는 Danish orchestra와 연주한 것을 선호한다.

공교롭게도 두 작곡가의 가장 비극적인 작품이 교향곡 6번이고 두 사람 다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느낌과 반응은 너무나 달랐다. 강박적인 말러와 진정한 의미의 리얼리스트 닐센... 죽음은 살아 있을 때는 절대 올 수 없다. 죽었을 때에는 죽음을 느낄 “내”가 없다. 따라서 죽음은 절대로 산 자를 해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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