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이야기] 죽음은 절대로 산 자를 해치지 못한다 - 조홍근
말러의 교향곡은 그의 인격의 모든 것을 낱낱이 쏟아 부어 빚어낸 가장 “인격적인” 산물이다. 6번 교향곡은 그의 나이 43세인 1903년에 작곡되었다. 그의 모든 교향곡 중에서 퇴로를 찾을 수 없는 가장 비극적인 음악이다.
곡의 분위기는 짙은 어둠이며 발작적으로 나타나는 평화로운 광경은 오히려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기괴한 소품으로 작용한다. 곡의 외형은 엄청나게 확대되어 목관이 20개, 금관이 19개 동원되었으며 cowbell, 첼레스터 심지어 쇠망치까지 동원되었다. 당시 신문의 카툰에는 창고 안에 말러가 희한한 악기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 “내 전기 호른(motor horn)은 어디 갔지?” 하고 외치는 풍자가 실릴 정도였다고 한다. 말러의 교향곡이 그렇듯이 연주시간은 한 시간이 넘지만 관현악의 운용이 투명하고 가곡적이라서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름다운 악상이지만 따라서 곧 이어 출현할 무언가를 예감케하는 불안을 느낀다. 3악장 Scherzo는 지평선 너머 구름이 몰려와 하늘이 어두어지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기괴하고 광포한 총주는 다가올 어둠을 예감한다. 30분에 달하는 4악장은 잔인한 운명의 힘에 굴복하는 말러 자신의 이야기이다. 전곡을 관통하는 어두운 분위기를 떨쳐버리려는 듯한 몸부림으로 하프와 바이올린의 천국같은 음률로 시작되지만 어두운 색조를 띤 저현악기와 관악기의 무거운 엄습은 비극적 결말을 예감케한다. 어두운 음률이 파편적으로 출현한 후 트롬본에 의한 송가와 같은 선율이 제시되고 분위기는 점점 밝아지며 회의적인 현악기의 선율마저 타악기에 의해 날려버리며 그로테스크한 행진을 시작한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의 행진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분위기이다. 이어 플륫의 밝은 선율과 금관에 의해 실려오는 귀에 익은 선율은 평화로움과 영혼의 고양을 느끼게 한다. 곡을 덮고 있던 어두운 분위기는 물러가고 천상에 온 것 같다. cowbell은 무심히 울려퍼지고 1악장 중간의 평화로운 천국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이올린의 높은 음이 익숙한 음률을 연주할 때 어두운 분위기의 첼로가 진입하고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분위기가 고양되어 터지기 직전 갑자기 엄청난 힘의 Hammer blow가 작열하면서 우리의 영웅은 쓰러진다. 파편화된 리듬이 지리멸렬하게 출현하다가 카운터 블로우에 다운 당한 복서가 제 정신을 차려 일어나 듯 악상은 어느덧 힘찬 행진곡으로 변화되어 승천하려 하지만 결정적 순가에 다시 강력한 Hammer blow 에 가격당하며 추락한다. 독주 바이올린이 도입부의 선율을 연주하면 잠시 정적이 흐른다. 다운당한 복서의 실신처럼 타악기와 현악기에 의해 이세상 것이 아닌 평화로운 음율이 저 멀리 울려퍼진다. 아마도 정신을 잃은 상태의 환상같은 분위기를 준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린 우리의 영웅은 보부도 당당한 행진을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영웅은 마침내 세 번째 Hammer blow에 의해 거목이 공중을 돌아 거꾸러지듯 쓰러지고 행진은 가장 비극적인 운명의 모티브와 함께 비극적으로 종말을 맞고 만다.
6번은 두 종류인데 영국의 Philharmonia orchestra의 스튜디오 녹음과 (EMI, LP, SLS 851) BPO와의 실황녹음이 있다(1966, mono, Testament, CD, SBT 1342). 실황이 훨씬 긴박감있고 어두운 기운이 뼈 속까지 베어있다. 스케일이나 디테일은 스튜디오 녹음이 훌륭하다. 러시아계 지휘자인 호렌쉬타인은 Royal festival hall에서 열린 말러 탄생 100주년 기념 교향곡전곡 연주회에서 9곡 중 3곡을 지휘했을 정도로 말러의 지휘에 정통하였다. Unicorn에서 출시된 1, 3, 6번은 명연주로 성가가 높으며 최근 BBC legend 시리즈로 출시된 9번과 현세의 노래 또한 빼어난 명연이다. Stockholm philharmonic orchestra와의 실황연주인 6번(Unicorn, LP, RHS 320-1)은 비극적 열정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연주이다. 세 번째 Hammer blow가 원본대로 재현된 연주를 듣고 싶다면 Charles Mackerras가 BBC philharmonic orchestra와 공연한 실황연주(BBC music magazine 2005년 2월호 부록)를 듣는 것이 좋겠다. 연주가 굉장히 다이나믹하며 녹음 역시 우수하다. 체코슬로바키아 음악 전문 지휘자로 시작하여 이제 대가의 경지에 오른 그의 물오른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갑자기 긴 정적이 찾아오며 흩어졌던 악상의 조각들이 천천히 하나의 형태로 모아져 의지에 찬 악상이 되어 푸가를 타고 전개된다. 이 것은 마치 긴 밤의 악몽에서 깨어나 구름 한 점 없는 싱그러운 아침의 하늘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윽고 밝고 승리감에 찬 선율이 제시되며 푸가형식에 의해 전개되면서 비극적인 분위기는 소멸되고 낙관적인 분위기로 종결된다. 베토벤은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에서 푸가를 통해 불굴이 의지를 표현하였다. 닐센은 푸가라는 용매를 통해 비극과 절망감을 용해하여 증발시켰다. 2악장 Humoresque는 그야 말로 무조음악 같은 분위기로 악장 내내 파편화되고 무기질적인 선율이 단속적으로 제시된다. 전망도 방향도 상실한 현대음악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3악장은 전곡을 통틀어 가장 심각하고 악장이다 결코 1악장의 도입부처럼 이완되고 즐거운 분위기로 돌아갈 것 같지 않은 심각하고 무거운 선율로 시작되어 푸가형식을 빌려 이런 분위기가 심화 확장되며 바로 4악장으로 넘겨진다. 4악장은 주제와 변주인데 닐센의 Falstaff라고 생각한다. 밝기도 하며 어둡기도 하고 왈츠풍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변주들이 제시된 후 익살스런 팡파레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세상은 그런 것이고 너무 심각하게 비관하지 말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슬프면 웃지요라는 말을 떠올리는 이런 비극적 역설은 베토벤이나 브람스 등의 곡에서 볼 수 있는 높은 정신성의 표현이다. 죽음의 공포를 직시한, 그러나 말러처럼 과도한 낭만적 환상이나 피안의 갈구와는 다르게, 현실 그대로 받아들인 닐센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리스인 조르바나 철십자 훈장이라는 영화에서 제임스 코반이 연기한 독일군 부사관이 다른 예술형식에서 볼 수 있는 대응점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곡가의 가장 비극적인 작품이 교향곡 6번이고 두 사람 다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느낌과 반응은 너무나 달랐다. 강박적인 말러와 진정한 의미의 리얼리스트 닐센... 죽음은 살아 있을 때는 절대 올 수 없다. 죽었을 때에는 죽음을 느낄 “내”가 없다. 따라서 죽음은 절대로 산 자를 해치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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