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09.9.12) 저녁에는 초등학교 친구들의 친목모임인 '소꿉회'가 남산동에 있는 '대나무집'에서 있었다. 회원이 모두 19명인데 오늘은 불과 10명밖에 참석하지 않아 겨우 반이 넘은 셈이다. 토요일인데도 회사근무때문에 못 나온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벌초철이라서 고향에 내려간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친구는 나오고 싶어도 건강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이 못 나온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팔자 좋게 여행이나 골프 약속으로 못 나온 친구도 있다.
이유야 다 있게 마련이지만, 분기 1회 만나는 친구들 모임인데 가급적 많은 회원들이 참석하여, 재미있는 시간을 갖었으면 좋으련만 회장의 부덕의 소치인지, 모임이 점점 시들어 가는 것 같아 매우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이 날 여섯시 모임이니까 집에서 다섯시에 출발하면 넉넉할 것 같아 준비를 하고 이수역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탔다. 5시 50분쯤 명동역에 내려 모임장소에 가 보니, 아무도 나온 친구가 없다. 더구나 몇일 전 에 예약을 하였는데 상도 안 차려 놓았길래, 주인한테 사정을 물어보니, "이제 준비하여야죠" 라고 여유있게 대답한다.
"아니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 상을 차려요" 라고 신경질을 부렸더니 주인 하는 말이 "아직도 한시간이 더 남았는데 왜 그러세요?' 라면서 오히려 나에게 신경질적이다. 아차싶어 벽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인 것이다. 집에서 한 시간을 앞 당겨 나온 셈이다. 주인에게 "아! 그러네요~" 하면서 겸연쩍게 사과하고 챙피스러워서 얼른 밖으로 나왔다. 아마 이런 것이 치매 초기현상이 아닌지 은근히 겁이난다.ㅎㅎㅎ
명동역 만남의 장소 벤치에 홀로 앉아, 한시간을 어디서 무엇을 할까하고 고민하던 중, 눈 앞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그가 바로 우리 친구 가영노씨다. 오산 직장에서 바로 이곳으로 오다 보니 좀 일찍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이런얘기 저런얘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들 한 두명이 나타난다.
오늘 이곳 '대나무집'은 지난 8월에 우리 퇴직동기 모임을 이곳에서 갖었는데, 고기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서 이 집에 또 예약을 한 것이다. 실내보다는 옥상분위기가 더 좋을 것 같아 옥상에 상을 차려 달라고 하였는데, 친구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한다. 종전에 왔을때만 해도 여섯시쯤이면 해가 중천이었는데 오늘은 서쪽 빌딩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조금 지나니 주변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밤하늘에 유독 빛나는 남산타워의 오색 찬란한 불빛과, 어둠 속에서 간간히 오가는 케이블카의 조명을 바라다 보며, 얼리지 않은 야들야들한 생 삼겹살을 노릿노릿하게 구워, 소주 한 잔하는 그 맛과 그 분위기.... 아마도 직접 체험하지 못한 친구들은 그 진미를 알리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옥상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7080시대의 감미로운 음악을 안주로 하면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제 2부 행사로 '남산길 걷기'에 나섰다. 오늘 코스는 숭의학원쪽에서 국립극장으로 가는 북측순환로(약 3.2km)를 걷기로 하고, 참석한 친구 모두가 보행길에 나섰다. 절기로 보면 백로가 지나 추분이 코 앞에 다가와서 그런지 제법 밤 기온이 선선하다. 남산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공기를 깊게 들여 마시니,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 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순환로에 들어서니 저녁식사를 마친 시민들이 나와 걷기운동도 하고, 어떤 젊은 연인은 팔짱을 꼭 끼고 정답게 아베크를 즐기기도 한다. 우리 일행도 그들과 어울려 이런얘기 저런얘기 나누면서 정겹게 고무 우레탄 쿠션길을 사뿐사뿐 걸어본다. 이때 갑자기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사연인 즉, 남산타워의 불빛이 조금 전만 해도 분명히 오른쪽에 있었는데, 지금보니 왼쪽에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봐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뀐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 여자 친구들끼리 주고 받는 말이 걸작이다. 용자 왈 '어머나~ 저 남산타워가 옮겨 갔나 봐' 하니까, 순현 왈 '아냐~ 우리가 옮겨 간거야' 이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시적인 표현이 아니겠는가? 시라는 것이 별 것 아니다. 그저 순수한 마음에서 꾸밈 없이 나오는 아름다운 말, 한 마디가 바로 시인 것이다. 마음이 곱고 순수하지 않으면 그런 감상적인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 법인데, 그런면에서 용자와 순현은 모두 시인이다.
사실은 순현이 말이 맞는다. 북측순환로의 길은 동국대를 지나 국립극장 쪽에 다달으면 감도는 굽이가 정 180도가 되는 구간이 있는데, 특히 야간에 이 곳에서는 그런 현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약 한시간 20분을 걸어 드디어 목표지점인 국립극장에 다달았다. 공연이 끝났는지 마당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리는 어느 젊은이의 도움으로 국립극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을 찍고, 장충단공원을 거쳐 어느 호프집에 들려 뒷풀이를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 갔다.
그날 회의에서 가을 단풍놀이를 가자는 의견들이 많아, 오는 10.24(토요일) 1박2일로 설악산에 가기로 하였는데, 그때는 많은 회원들이 참석하리라고 보면서 그 때를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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