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이 수원이라서, 모처럼 틈을 내어 팔달산에 올라가, 가을 풍경도 구경하고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유적지도 답사하였다. 이곳 팔달산 순환도로에는 오후 늦은 시간인데도 많은 이들이 찾아와 걷기도 하고 허리돌리기 등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특히 중년 이후의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한가롭게 산책하는 모습을 보니, 이 가을의 낭만적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는 것 같아 보기가 좋았다.
때는 바야흐로 입동이 지나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이 눈앞에 다가온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가을도 깊어만 간다. 그렇게 고왔던 단풍도 이제 낙엽이 되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떨어진 낙엽은 바람에 나뒹굴어져 발길에 차이고 밟히고 찢어져 생을 마감한다. 앙상한 가지에는 한 두개의 마지막 잎새가 바람에 하느작거린다.
언제인지 모르나 곧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운명을 잎새는 아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의 삶도 낙엽의 길처럼 생의 내리막 길을 가고 있지만 결코 현실을 부정하고 비관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나름대로의 행복과 낭만을 추구하는 멋쟁이가 되고 싶을 뿐이다. 상념에 잠기어 정처 없이 걷고 있다 보니 어느새 장안문이 눈앞에 보인다.
팔달산은 수원시 중심에 있는 산으로서 산 전체가 아름다워 팔달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태조가 그림을 보고 "과연 사통팔달한 산이다"고 한 데서 이 산이 팔달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도심 속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탁 트여 시 전체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화성은 서장대, 서노대, 서포루, 화양루, 장안문, 화홍문, 창룡문, 연무대, 팔달문으로 이어져 있고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명실공히 수원의 관광명소로서 많은 외국인과 내국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벤치가 비어 있어 가을이 더 쓸쓸해 보인다.
기와 담 지붕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산책로 주변에 단풍이 떨어져 수를 놓고 있다.
커피숍에서 흘러 나오는 잔잔한 기타연주 음악의 선율이 가을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팔달산에서 내려다 본 화성행궁의 모습이다.
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 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조선 22대 정조대왕의 동상이다.
정조는 선왕인 사도 세자가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자
그능을 당시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 받던 수원(지금의 화성군)으로 이장하였고,
능 주위에 살던 주민 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도시와 성곽을 축 성하였다.
성곽의 포문으로 내다 보이는 가을풍경이 마치 액자 속의 그림과 같이 보인다.
화서문과 장안문 성곽 외곽 주변에 갈대가 한창이다.
수원화성의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의 모습이다.
공심돈은 전시에 사용되는 장거리 관측소로써 위·아래에 구멍을 많이 뚫어서
바깥동정을 살필 수 있을 뿐아니라 총포를 쓸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성벽상부에 3층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에는 군사들이 몸을 가리게 되어있다.
북문 주변에 있는 장안공원 잔디가 노랗게 물 들었다.
북서포루의 모습이다. 포루는 군사들을 엄폐하기 위하여
성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위에 설치한 건물이다.
누각은 2층으로 아래층에는 총구멍, 포구멍을 내고 위층 또한 총구멍을 냈다.
장안문(일명 북문)의 웅장한 모습이다.
이 문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성문 형태를 취하였고,
규모나 구조는 조선 초기에 세워진 서울 남대문과 매우 비슷하나 규모는 더 크다고 한다.
남대문에 비해 좀더 새로운 것은 옹성, 적대와 같은 방어 시설을 갖춘 것이 특색이다.
1920년대 수원시 시가지 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리고,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대로 복원되었다.
장안문 2층 누각에는 마루가 깔려 있다.
화서문과 서북공돈심의 모습이다.
화서문은 보물 403호이며 한국에 있는 다른 성곽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 구조도 특수하며 이것이 있음으로써 부근 일대의 경관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팔달산에서 내려다 본 수원시내의 전경이다.
팔달산에 위치한 서남암문의 모습이다.
암문이란 성의 정문이 아닌 사잇문으로 양식, 가축, 수레등을 들여오거나
배후공격 및 군수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은밀하게 만들어 놓은 비밀문이다.
서남암문에서 화양루에 이르는 성곽내부 길이다.
화양루의 모습이다.
서남각루로 서장대와 팔달문의 중간점에서 외부로 돌출된 외성의 끝부분에 위치하며
남쪽을 방어 하기 위한 요충시설이다.
효원의 종이다. 종 치는 사람의 효성심을 길러주고 가족의 건강과 나라의 평안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 종을 세번 친다고 한다. 종을 치는데 얼마간의 돈이 들어간다.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노대의 모습이다.
노대란 바깥이 잘 내다 보이는 성 안 높은 곳에 대를 설치해 놓고 성 밖 동정을 살피다가
바깥의 움직임에 어떤 변화가 있을 때 이를 깃발 신호를 통해 성안에 전달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 모습이다.
일명 화성장대라고 부르며 사방을 내려다 보며 군사를 지휘하는 본부 건물이다.
이곳도 2006년 5월 1일 새벽 만취자의 방화로 목조건물인 누각기둥과 서까래 등 누각 2층이 모두 불에 탔으며,
2008년 화성사업소가 4억 8천600만원을 들여 복원하였다.
서장대 앞에 꽂아 놓은 이 노란 깃발은 서장대에 지휘관이 있는 표시이고,
흰 깃발을 꽂으면 병조판서이고 용이 그려진 깃발은 임금이 있다는 표기이다.
보물 402호로 지정된 팔달문(일명 남문)의 모습이다.
이 문은 돌로 쌓은 무지개모양의 홍예문 위에 문루를 세웠으며,
주위 4면에는 담장을 둘러쌓고 전면에는 반월형으로 옹 성을 축조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성문건축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형식을 모두 갖추었다
수원성곽을 연결하는 화성열차의 모습이다.
회사 앞에 있는 은행나무의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었다.
노란 은행잎은 다 떨어지고 은행열매만 매달려 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수원천 제방의 양지바른 곳에 비들기들이 모여있다.
수원천변의 갈대가 시들어 가고 있다.
동북각루의 건축양식이 수려하다. 절벽을 따라 성을 쌓고 바위에 누를 세웠으며
편액에는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고 씌여져 있다 [전 참판 조윤형(曺允亨) 씀]
화홍문의 모습이다. 수원천을 가로지르는 성곽에 7간의 홍예로 된 돌다리를 하천 위에 걸쳐서 설치하였다.
암문의 모습이다. 적의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 놓은 비밀 통로로서 성 밖과 통하는 문이다.
동북포루의 모습인데 벽화가 인상적이다.
화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내도이다.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고 훈련하는 연무대의 모습이다.
연무대 앞에는 궁도장이 있고 멀리는 동북공심돈이 보인다.
4대문 중 하나인 창룡문이다.
봉돈의 모습이다. 일종의 봉화대로서 5개의 화두가 있다.
수원 남문시장 상가거리의 장식 조명이다. 아직 초저녁이라 조명이 현란하지는 않다.
장안문의 야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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