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년 1월 4일 08시 00분에 탕정 신도시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고 강한우(故 姜漢禹)의 유해가 천안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제를 올리고, 고인이 살던 천안시 성정동 자택을 거쳐 아산시 탕정면 호산리 1구 에 있는 탕정 신도시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위원회장으로 영결식을 엄숙하게 거행하였다.
이 자리에는 유가족을 비롯하여 탕정 신도시 주민대책위원들과 지방 유지 등의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장에는 고인의 넋을 기리는 수 많은 만장과 대책위원들이 굴건제복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서 투쟁의지는 물론 고인에 대한 추모 분위기를 더 한층 높게 하였다.
이날 영결식은 고인의 약력소개와 추도사낭독, 고인의 생전 육성청취, 묵념, 유가족과 조문객의 헌화와 분향순으로 이어졌다. 특히 고인이 생존 시 주민의 요구사항을 행정관청에 강력히 주장하고 호소하는 육성 녹음 테이프를 들려 줄 때는, 모든 조문객들이 눈시울을 적시었고,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숙연한 자세로 명복을 빌었다.
고인은 평생 동안 노동조합의 수장으로서 근로자들의 복지와 지위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투쟁하여 왔다는 사실은 이미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노동운동을 하면서 강력한 카리스마는 그의 상징이기도 하였지만, 부하 사랑이나 동지와의 우정도 남달랐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지난 동짓날(12. 21) 팥죽을 집에서 직접 쒀서 대책위 사무실로 가지고 와 " 맛있으니까 한번 먹어 봐 " 하면서 동지들과 팥죽을 나눠 먹었다는 사실만 해도 깜짝 놀랄 일이다.
자기 몸도 성하지 않으면서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러한 성의를 보여준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훈훈한 인정과 리더쉽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고인의 죽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하고 비통해 하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정신을 과소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결식이 끝나고 고인의 영면장소인 탕정면 동산리 선영까지 꽃 상여로 운구되면서 요량잡이의 애조띤 상여소리는 상주와 문상객들의 슬품을 더해 준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허~" "이곳이 나의 집이란 말인가. 어허~ 어허~" 12시 전에 하관을 하고 봉분을 완성한 후 위령제를 지내므로서 고 강한우의 장례를 모두 마치게 되었다.
끝으로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면서,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수고를 아끼지 않은 탕정주민대책위원회 위원님들과 동산리 청년회, 부녀회 여러분, 그리고 조문객 여러분들에게 진주강가 종중의 한사람으로서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히 드리고 싶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습니다...
故 姜漢禹 위원장의 영정이다.
이렇게 일찍 갈 줄 알았으면 멋진 영정 사진이라도 미리 만들어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만장의 물결과 굴건제복한 동료들의 의연한 모습은
고인의 영혼을 다소나마 달래 주리라고 본다.
주민대책위원회 고문님과 지방 유지분들께서 헌화를 하고 있다.
싱그러운 하얀 국화가 헌화객을 기다리고 있다.
주민대책위원회 간부들이 분향 재배를 하고 있다.
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 만장이 가지런히 설치되어 있다.
영결식장에 고인의 유해가 꽃상여에 안치되어 있다.
생전에 고인이 근무하던 사무실 콘테이너 박스에 명복을 비는 근조 플래카드가 설치되어 있다.
만장에는 고인를 기리는 문구도 있고 투쟁의지를 담은 문구도 보인다.
고인의 사위가 영정을 모시고 뒤에 운구 상여가 따르고 있다.
"학생 진주강공지구"의 붉은 만장 뒤에 검은색의 만장에 줄지어 있다.
장례행렬이 영결식장을 떠나고 있다.
동산리 선영에 도착한 상여를 내려 놓고 있다.
이렇게 화려한 꽃상여 안에 고 강한우의 유해가 누워 있다.
하관식에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하였다.
봉분을 완성하고 위령제를 지내려고 제물을 진설하였다.
상주와 유가족들이 마지막으로 분향재배를 하고있다.
이렇게 허무 할 수가 있는가?
불과 2개월 전에 우리 종중의 시제에서 조상의 묘에 분향을 하는 고인의 모습이다.
필자는 이 사진을 우리 종중카페에 올리면서 "어서 빨리 건강이 회복되어 우리 종중은 물론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큰 일꾼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라고 기원 하였건만
이렇게 빨리 갈 줄은 정말 몰랐다. 애통할 일이로다!!
대책위원장으로서 연설대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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