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Classic

베를린 필하모니닉 홀

凡石 2009. 4. 27. 21:44

베를린 필하모니닉 홀

텐트형 지붕… 古代 원형무대 재현

 


1963년 10월 15일 저녁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베를린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연주를 들었다. 이날 오전 독일 국가 연주와 함께 개관 테이프를 끊은 베를린 필하모니 개관 공연이었다. 브란트 총리 옆자리엔 이 콘서트홀을 설계한 한스 샤룬(1893~1972)부부가 앉아 있었다.

 

1882년 창단된 베를린필은 롤러스케이트장을 개조한 옛 필하모니 건물이 44년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뒤 교회당.영화관.학교 강당을 전전했다. 베를린 시민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베를린필의 친구들'을 결성해 필하모니 신축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 '필하모니 복권'에 이어 액면 가격에 5페니의 기금을 보탠 10페니, 30페니짜리 우표도 발행됐다.

무대를 건물 중앙에 배치하고 객석을 16개의 블록으로 샤룬의 설계안은 '구두 상자'모양의 장방형(長方形) 콘서트홀에 익숙해 있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설계안이 당선 직후 반대 여론에 부닥친 것도 이 때문이다. 카라얀은 샤룬의 설계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베를린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결코 적지 않은 객석수(2천2백40석)지만 무대와 객석의 최대 거리는 30m에 불과하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텐트형 지붕과 외관은 실용적 모더니즘의 산물이다. 공연장 설계는 안(무대와 객석)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각.청각.공간 등 모든 면에서 음악을 중심에 배치한 건물이다.

 

'카라얀 서커스'란 애칭으로 불렸던 필하모니는 고대의 원형 무대를 재현한 것 같은 객석 배치로 온통 축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주자와 청중, 청중과 청중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체험한다. V자형 콘크리트 기둥이 객석을 떠받치면서 발코니를 이루고 있는 로비도 이채롭다. 처음 방문한 관객이라도 알파벳 글씨만 따라 계단을 오르면 금방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첫선을 보인 포도밭 스타일의 객석 배치는 덴버 콘서트홀, 카디프 데이비스 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토론토 로이 톰슨 홀, 도쿄 산토리홀, LA 디즈니홀, 로마 파르코 델라 무지카의 모델이 되었다.

 

 

빈 뮤직페어라인

 

 

새해 아침 전세계 음악애호가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요한 슈트라우스의 경쾌한 왈츠와 함께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공수해온 꽃으로 수놓은 빈 무직페어라인의 황금빛 내부 장식이 감탄을 자아낸다. 무직페어라인은'음악 모임'이라는 뜻이다. 건물 소유주는 1812년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대본작가인 요제프 존라이트너의 주도로 결성된 빈 음악애호가협회. 1870년 1월 6일 무직페어라인이 개관하기까지에는 베토벤의 제자였던 루돌프 대공의 재정적 도움이 매우 컸다.

 

대극장인 '황금홀'은 세계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심포니 전용홀이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무직페어라인 무대에 서기 전에는) 음악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 몰랐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법이 등장하기 전에 설계된 것이어서 '음향학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테오필 폰 한젠(1813~91)이 설계한 이 공연장은 건물 곳곳에 그리스 건축의 영향이 배어 있다. 황금홀(1천6백80석)에는 32개의 여신상이 발코니석을 떠받치고 있다. 아우구스트 아이젠멩어가 그린 천장 벽화 '아폴로와 뮤즈신들'등 풍부한 내부장식은 좌우 벽면 상단의 창문 40여개와 20개의 발코니석 출입문과 함께 객석 구석구석에 소리를 확산시킨다.

 

길이 48.8m, 너비 19.1m, 높이 17.75m로 만석(滿席)시 잔향 시간 2.0초를 자랑한다. 실내를 대부분 회반죽을 바른 벽돌로 마감했고 무대와 출입문만 목재를 사용했다. 베토벤.브람스.브루크너.말러 등 고전.낭만주의 교향곡을 연주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홀은 없다. 보스턴심포니홀이나 탱글우드 세이지 오자와홀도 이 황금홀을 모델로 설계한 것이다.

 

빈 필하모닉은 이곳에서 연간 30여회의 공연을 치른다. 실내악 전용홀인 브람스홀(6백석)이 딸려 있으며 건물 내에 음악애호가협회 사무실, 음악출판사 우니페어잘 에디치온, 빈 남성합창단, 빈 필하모닉 사무국 등이 입주해 있다. 현재 광장 지하공간에 교육센터.리허설룸을 확충하는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진행 중이다. (www.musikverein.at)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라이프치히 아우구스투스 광장은 방송국.우체국.호텔.대학 등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비즈니스.레저 센터다. 1981년 문을 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광장을 사이에 두고 라이프치히 오퍼(1960년 개관)와 마주보고 있다.

베를린.드레스덴.뮌헨.빈.파리 등 궁정 도시와는 달리 대학.상업 도시로 출발한 라이프치히는 공개 연주회 전통이 일찍부터 시작됐다. 1781년 라이프치히 양복조합 소속 상인들이 300년 된 무기고를 사들여 1층은 직물 전시장, 2층은 500석짜리 콘서트홀로 꾸몄다. 여기서 16명의 악사를 고용해 첫 공연을 한 것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GO)의 시작이다. 게반트하우스란'양복조합 건물'이라는 뜻이다.

1842년 개.보수 공사를 거쳐 1000석으로 늘렸지만 역부족이었다. 1884년 개관한'새 게반트하우스'(1700석)는 음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보스턴 심포니홀이 모델로 삼을 정도였다. 하지만 1944년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됐다. 그후 LGO는 동물원 내 컨벤션센터에서 공연해왔다.

현재의'세번째' 게반트하우스의 로비에는 지카르트 길레가 그린 대형 벽화'삶의 노래'가 축제적 분위기를 돋운다. 무대 정면 파이프 오르간에는 세네카의 글에서 따온 LGO의 모토가 라틴어로 아로새겨져 있다. 'RES SEVERA VERUM GAUDIUM'(진정한 쾌락은 중대한 일이다).

 



도르트문트 콘체르트하우스



26년전 학생 시위대가 골목을 가득 메웠던 독일 도르트문트 브뤼크 거리는 시민들의 기피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마약과 폭력이 판을 치는 사창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1992년 심포니 전용홀 건립 추진을 위한 시민단체인 '도르트문트 문화기부'가 출범했고 섹스숍과 도박장으로 빼곡했던 브뤼크 거리에 건물 부지를 마련했다.

2002년 9월 문을 연 도르트문트 콘체르트하우스는 도심 재개발의 신호탄이었다. 덕분에 섹스숍이 하나 둘씩 사라졌고 골목 건너편에 스페인 레스토랑도 문을 열었다. 콘서트홀은 IT(정보기술).소프트웨어 산업에 종사하는 고급 인력들을 끌어들이는 '문화적 미끼'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도르트문트 하면 맥주공장.철강업.탄광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도르트문트 시가 4천9백만 유로(약 7백35억원)의 건축비를 댔고 연간 3백90만 유로(약 58억원)의 운영비는 민간 부문의 지원을 받는다. 객석수는 1천5백60석. 독주회.실내악 공연에선 칸막이 커튼을 내려 9백석으로 줄일 수도 있다. 천장에는 잔향시간 조절 장치가 달려 있다. 장르에 따라 28개 조각으로 된 무대 바닥의 높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무대 정면에는 파이프 3천5백65개짜리 콘서트 오르간이 눈길을 끈다. 명지휘자들의 초상으로 벽면을 가득 메운 지하 레스토랑(1백20석), 무료 로비 음악회, 합창 강좌 프로그램도 시민들에게 인기다.

 

 

예술의 전당 (Seoul Arts Center)


한국 최초의 종합문화예술기관.

한국방송광고공사의 공익자금으로 건립된 예술의 전당은 부지 7만 1,026평, 건축연면적 3만 6,407평으로 1982년 계획·발의되어 1984년 착공되었으며, 1988년 음악당·서예관의 1차 개관에 이어 미술관·예술자료관 등이 1990년 개관되었고 1993년 축제극장을 포함한 전체공간이 완전 개관되었다. ① 음악당 : 2,600석의 콘서트홀과 400석의 리사이트홀, 리허설룸, 분장실, 출연자 휴게실 등을 갖추고 있다. ② 서예관 : 전시실(12실), 강의실(11실), 다목적 회의실(1실)을 갖추고 1년과정의 서예강좌를 개설, 시행하고 있다. ③ 미술관 : 연건평 3,599평에 전시면적 2,500평으로 순수미술·생활미술·환경미술·건축·사진 등의 조형활동공간이다. ④ 예술자료관 : 연건평 3,545평으로 필름아카이브·어린이자료실·인쇄매체실·시청각정보실 등을 갖춘 한국문화예술활동의 종합정보 센터이다. ⑤ 축제극장 : 연건평 1만 3,162평으로 2,600석의 오페라하우스, 800석의 연극극장, 300석의 실험소극장을 갖추었다. 그밖에 전통한국정원·장터·놀이마당·연못 및 만남의 광장 등과 은행·예술상가 등 부대시설이 있다.

 

  

세종문화회관 (Sejong Center)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문화예술 공간.

설립연도 : 1972년
구분 : 문화예술 공간(재단법인)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
설립목적 : 서울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 제공, 연주회 주최 및 공연
주요업무 : 연주회 주관, 연주단 지원, 대관


1972년 서울 시민회관이 불타 없어진 뒤, 서울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1974년 착공하여 1978년에 준공, 개관하였다. 지하 3층, 지상 6층으로 건축 연면적은 1만 6122평, 부지면적은 5,611평이다. 건축양식은 한국의 옛 건축양식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용하여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갖도록 하였다. 원래는 서울특별시가 운영하였으나,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에 따라 1999년 7월 1일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시설은 대극장·소극장·미술관본관·미술관별관·미술관신관 등 기본시설과 컨벤션센터·컨퍼런스홀·소회의실·분수대광장·데크플라자·삼청각(三淸閣) 등 부대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① 대극장은 세종문화회관의 주무대로, 동양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과 웅장한 무대를 갖추었고, 3,822석의 객석이 있다. 무대 규모는 1,785㎡이며, 17m의 회전무대와 4개의 수평이동무대, 3개의 승강무대로 이루어져 있다. 음악·연극·무용·영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다. ② 소극장은 1·2층에 있으며, 442석의 객석을 갖추었고, 무대 면적은 300㎡이다. 구성은 스타디움 형식으로 100여 명이 동시에 설 수 있고, 주로 소규모 행사와 공연에 이용된다.

③ 미술관 본관은 복합문화공간을 위한 전시 전문관으로, 면적은 320평이며,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④ 미술관 별관은 지하철 역사(驛舍)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으로,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4번 출구에 있다. 총 80평 규모이며, 제1·2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광화문갤러리로 부른다. ⑤ 미술관 신관은 세종문화회관 데크플라자에 붙어 있는 전시 공간으로, 규모는 170평이다. 1·2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한 장르의 전시와 행사용으로 이용된다.

⑥ 3층에 있는 컨벤션센터는 학술 심포지엄과 국제회의·행사·패션쇼·국악공연 등에 이용된다. 최대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 행사장으로, 적외선 방식의 동시통역기 5식과 스크린·의자·탁자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⑦ 4층의 컨퍼런스홀은 세미나와 심포지엄 장소로 이용된다. 대관은 컨벤션센터와 함께 오전·오후·야간 등 시간대별로 이루어진다. ⑧ 삼청각은 대지 5,884평, 연건평 1,331평으로 6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1년 10월부터 세종문화회관이 전통문화 체험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전통공연·세미나·문화관광상품매장·전통음식점·전통예술습득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된다.

산하 예술단체로는 교향악단·국악교향악단·극단·뮤지컬단·합창단·무용단·오페라단·청소년교향악단·소년소녀합창단이 있다. 기본시설과 부대시설은 대관규정에 따라 회관의 자체 운영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대여할 수 있는데, 일정한 신청 절차를 거쳐야 하며, 별도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 회관 건물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에, 삼청각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30-115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