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생활 수기

남한산성의 하루

凡石 2010. 4. 5. 18:29

 

 엊그제('10.4.3 토)는 우리 죽마고우 8인회의 1/4분기 정기모임을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남한산성에서 갖었다. 10시 30분 마천역 2번출구에서 친구들과 만나 등산로 입구에 접어드니, 많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좁은 도로 양측에는 등산장비를 파는 가게와 족발, 김밥, 삼겹살, 두부요리 등을 파는 음식점으로  꽉 찼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으며 산 입구에 다달으니, 맨 먼저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 우리를 반긴다. 아직 봄 내음은 물씬하지 않지만, 초목에는 새싹이 돋아 나고, 겨우내 잠자던 개구리는 바깥 세상을 보려고 힘껏 기지개를 켠다. 그러고 보니 내일 모레가 '청명'이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야말로 온 세상의 만물들이 꿈틀댄다.

 

 남한산성의 안내판 앞에 다달아 오늘의 산행코스를 의논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서문쪽으로 곧장 오르는 2번 또는 3번코스를 택하는 것이 보통이나, 우리는 일부러 더 많이 걷기 위해, 가장 긴 코스인 우측 능선코스(4번)를 택하였다. 아직은 이팔청춘이니까...ㅎㅎ

 

 한참을 오르다 보니 내 앞에서 어느 아저씨가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 를 구성지게 불러댄다. 아마도 화창한 봄 날, 따사로운 햇살을 쬐며,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산에 오르는 것이, 그저 좋은 모양이다. 아직은 꽃이 안 피었지만, 이제 머지않아 온 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고, 들엔 개나리가 활짝 피겠지... 하는 생각에 도취되어, 저절로 흥얼거리는 것 같다.

 

 나도 이런 분위기에는 조금 약한 놈이라서, 그 아저씨의 노래를 같이 따라 불러 본다. 어느새 둘이 뽕짝이 맞아서 그런지, 노래소리가 점점 커진다. 비록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보고 미친 사람들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랑곳 없이 더 신나게 불러댄다. 정말 신이 난다.

 

산에는 진달래 들엔 개나리 

산새도 슬피우는 노을진 산골에 

엄마구름 애기구름 정답게 가는데 

아빠는 어디갔나 어디서 살고있나 

아~~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잃은 기러기

 

하늘에 조각달 강엔 찬바람 

재넘어 기적소리 한가로운 밤중에 

마을마다 창문마다 등불은 밝은데 

엄마는 어디갔나 어디서 살고있나 

아~~아~~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잃은 기러기

     

 

 

 

 이 노래를 부르고 나더니, 이 아저씨가 흥이 더 나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우리가곡 '동무생각'을 부른다. '봄에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부른다.... '또  따라 불러 본다. 더욱 신이 난다.

 

 이제 그만하고, 그 아저씨를 앞지르면서 옆 모습을 보니, 아마도 연세가 70은 갓 넘은 것 같다. 점잖게 생긴 분이 살짝 웃어 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다.  "아저씨! 왕년에 가수였나 봐요. 노래를 너무 잘 부르시네요" 라고 추켜 세웠더니, 그저 겸연적게 웃으시기만 한다.

 

 그렇다. 늙어 가면서 아내와 같이 여행도 하고 등산도 하면서, 때론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노래 저런 노래를 흥얼거려 보는, 여유를 갖는 다는 것이, 정신적이나 체력적으로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것이 바로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라고 보면서 ,그렇게 살아 가고자 한다.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고나니, 한시가 다 되어 간다. 예정대로 우리는 하남시 고골유원지에 있는 '좋은집'을 찾아 내려 간다. 도착하니 한시 반이다. 깨끗하게 지은 통나무 집에서 정갈하게 차려 놓은 '회 정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세상만사가 부러울 것이 없다.

 

 여기서 각자 집으로 가려 하였으나, 한지섭 회원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 "우리 다시 남한산성으로 올라가서, 마천역으로 내려가자" 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온 길을 되 돌아 올라 가자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냐고 하면서 다들 미쳤냐고 핑잔을 준다. 

 

 그러나 우리 주마고우들은 누구 하나의 의견이라도 그냥 무시해 버리는 법이 없다. 다수결로 정하기로 하여, 하나 하나의 의견을 모아 보았더니, 의외로 6명 중 3명이 찬성을 한다. 누군가가 사사오입의 정신으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고 하면서 식탁을 꽝꽝 친다.

 

 배도 부르고 술도 취하고... 우리는 정상을 향해 강행군을 한다. 좀 더 색다른 길로 가기 위해, 길도 아닌 길을 택하여 어렵게 성곽에 도착해 보니 서문이 보인다. 2번 코스를 타고 마천역으로 내려 가다 보니, 누군가가 한 소리를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있냐?" 고 하면서 막걸리 한잔을 더 하고 가자고 부추긴다. 다들 싫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두부 전문점에 들려 고소한 생두부에 묵은지를 한 잎 올려 막걸리 서너잔을 하고 나니 피로가 확 풀린다.  

 

 운동도 실컷하고, 배도 부르고, 노래도 하고... 더 이상 즐거울 것이 없는 하루였다. 오늘 재미있는 자리를 만들어 준 이은영 회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