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0.9.19)는 입사동기들끼리 모이는 '이륙산악회'에서 9월 정기 산행을 하였다. 참석인원은 모두 11명이다. 지난 8월 산행에서는 무려 25명이 참석하였는데 오늘은 그보다 훨씬 적다. 아마도 지난 번에는 '이륙회' 정기모임을 산행과 같이 하다 보니, 많은 회원들이 참석하였던 것 같다.
특히 이번에는 추석명절을 코 앞에 두고 있어, 고향에 내려 가거나 조상 묘소에 벌초 하러 간 친구들이 꽤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십여명 이상 모였다는 것은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다. 오늘 여기 나온 친구들의 면모를 낱낱이 살펴보니 하나같이 건강하고 밝다. 아마도 평소 자기의 건강관리는 물론 친구들간에 우정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친구들이 아닌가 싶다. 한 말로 말해 이륙회 멤버의 모범생들이다.
아침 10시반 수유역 3번 출구에서 만나 마을버스를 타고 우이동 버스종점에 다달으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이 정도 비는 우산을 쓰면 얼마던지 산행을 할 수 있다고 보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도선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올라가는 길 한 쪽에는 마치 우리가 나라를 위해 큰 일이라도 하러 가는 양, 태극기가 우리를 반기면서 바람에 나부낀다.
그런가 하면 어느 조그마한 카페에서는 가수 최진희의 노래가 빗속을 타고 구성지게 흘러 나온다. 누군가가 따라 불러 보지만 음정 박자 모두 엉망이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린다. 이 때 조회장이 한마디 한다. 우중산행도 그런대로 재미있다고.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오기택이 부른 '우중의 여인'이 생각난다. 음정은 어느정도 알겠는데 가사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 때 누군가가 가사를 읊어댄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밤비를 헤치고, 나의 창문을 두드리며 흐느끼는 여인아. 만나지 말자고 맹세한 말 잊었는가, 그대로 울지 말고 돌아가 다오, 그대로 돌아가 다오. 깨무는 그 입술을 보이지를 말고서..."
드디어 1차 목적지인 도선사까지 왔다. 비는 금방 안 그칠 것 같이 계속 내린다. 여기서 의견이 분분하다. 더 올라 갈 것인지 아니면 하산 할 것인지 두갈래 길이다. 어느 한 쪽은 여기까지 왔으니 깔딱고개를 넘어 가서 준비 해 온 점심을 먹고 가자는 것이고, 다른 한 쪽은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미끄러워서 안전상 위험하니 그냥 내려가자는 것이다. 양 쪽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고 보아, 거수로 전체 회원의 의향을 타진한 결과 전자가 많아 계속 올라 갔다.
깔닥고개를 단숨에 올라 차니 숨이 가쁘다. 힘이 들면 좀 쉬었다가 가는 것이 산행의 기본인데, 미련해서 그런지 아니면 오기가 있어 그런지 여간해서는 쉬지 않고 올라 가는 것이 내 버릇이다. 아직까지는 그만큼 체력이 뒷받침이 되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그래도 무리 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보아 고쳐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잘 않된다.
약 3~4분이 지나니 세 친구가 올라 온다. 그들의 체력은 마치 강철과 같이 굳건하다. 한 친구는 매일 한강 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의정부까지 왕복을 하고. 또 한 친구는 일주일에 두 서너번씩 테니스를 하고, 또 한 친구는 매일 새벽마다 석촌호수를 두 세바퀴씩이나 뛰어 다닌다니 어찌 체력이 않 좋을 수 있겠는가. 사는 날까지 그 체력 그대로 유지하기 바란다.
깔딱고개를 넘어 가니 산장이 보인다.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라고 내리던 비도 잠시 멈추었다. 누군가가 야외에 만들어 놓은 돌 식탁에 둘러 앉아 싸가지고 간 막걸리, 족발, 돼지껍데기, 김밥, 과일, 매실주 등을 꺼내 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오늘 술은 '지부지처'로 하자고 누군가가 말하길래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그 뜻이 그럴싸하다. "지가 붓고 지가 처 먹는것"이라고 한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족발 한 첨 뜯고, 새콤달콤한 매실주 한 잔에 돼지껍데기 한 첨 입에 넣으니, 취기가 돌면서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신다. 그저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서로 시시덕거리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은 그 어느 보약보다도 더 좋은 보약이 될 수 있다. 세상만사 부러울 것 없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점식식사를 마칠 무렵 잠시 멈추었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얼른 짐을 싸서 오던 길을 되 돌아 와 우이동 버스 종점부근에 있는 어느 순두부집에 들려 뒷풀이를 하였다. 빈대떡과 생두부 안주에 막걸리를 마셨는데 점심을 먹은지가 얼마 않되서 그런지 맛은 별로였지만 분위기만큼은 화기애애하다.
버스를 타고 수유역에 내리니 다들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해서 그런지, 누구 하나 먼저 간다고 인사하는 사람이 없다. 이 눈치를 잘 아는 조대장이 나선다. 그냥가면 서운하니까 어디가서 호프 한잔 하면 어떻겠냐고 하니까 모두 이구동성으로 대 찬성이다. 어느 조용한 카페에 들려 밀러 생맥주를 몇 쪼기하면서 서로 건배를 제의한다. 어느 친구는 '오징어'를 위하여, 어느 친구는 '성행위'를 위하여, 또 어느 친구는 뭐를 위하여라고 하는데 잊어 먹어서 생각이 안난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막걸리도 마시고 맥주도 마셨으니 더 이상 마실 것이 없다. 또 마실만큼 마셨으니 더 이상 마신다는 것은 몸에도 좋지 않아 각자 집으로 돌아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때 누군가가 당구나 치고 가자고 큰 소리로 외친다. 몇몇은 집으로 돌아 고 나머지 7명은 당구장으로 가서 두 패로 나누어 당구를 쳤다. 당구 실력은 모두 200이하로서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구력들이 꽤 오래된지라 폼은 그야말고 프로급으로서 일품이다.
당구를 치고 4호선 열차을 타고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다 되어 간다. 오늘 하루 땀도 적당히 흘리고, 술도 적당히 마시고,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다 보니 기분이 좋다. 오늘 모임을 주선한 조대장께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우리 이륙회 친구들이 내내 건강하여 앞으로 이런 모임이 자주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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