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생활 수기

장모님 덕분에 풍성해 진 우리집 베란다

凡石 2010. 9. 23. 10:20

  

 오늘(10.9.22)은 즐거운 추석이다. 아침 일찍 큰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오후 늦게 장모님을 뵈러 처갓집에 들렸다. 웬만하면 한 두시간 정도면 충분히 가는 길인데 오늘은 길이 막혀 두 서너시간이 걸린다. 뒤 늦게 도착하니 처갓집 식구들 모두가 우리를 기다리면서 반갑게 맞이 해 준다. 그중에서도 제일 반가워 하는 분은 역시 장모님이시다. 차가 막혀서 얼마나 고생하였느냐면서, 다 큰 외 손주들을 얼싸안고 얼굴을 비벼대신다.

 

 여든이 다 되셨지만 손수 살림도 하실 정도로 아직까지는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다. 그 분이 건강을 유지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평소 식생활은 짜고 매운 것은 가급적 피하시고 소식을 하시며, 틈만 나면 동네를 한 바퀴씩 돌면서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신다. 또한 정서적으로도 매우 안정된 취미를 갖고 계시며, 매사를 무리하지 않고 순리대로 사시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분의 주요 일과를 보면 주로 베란다에서 화초 가꾸는 일이 대부분이며, 거실 곳곳에 갖가지 소품과 가재도구를 아기자기하게 정리정돈하여, 집안을 예쁘게 꾸미고, 가끔 시간이 나시면 베란다에 있는 티 테이블에 앉아 꽃과 더불어 음악(주로 뽕짝)을 들으시며 커피 한 잔을 하시는 것을 재미로 삼고 있다.

 

 가끔 집 근처에 있는 꽃 가게에 들려 화초 모종을 사다가, 그림이 예쁘게 그려진 사기 화분에 옮겨 심고, 매일 물을 주면서 애지중지 키워 온 화분이 수 십여개가 넘는다. 화분대에 진열된 화초를 보면 장모님의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잎은 싱싱하고 푸르며 꽃은 화사하다. 대개 보통 사람들이 난을 키울 때 물관리를 잘 못 해서, 끝이 메마르는 것이 다반사인데, 그런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붉은 꽃 애기장미와 노란 꽃 동양난이 제각기 향기를 내 뿜으며, 누가 더 예쁜가 내기라도 하듯 나에게 손짓을 한다. 이 꽃 저 꽃 한 무더기가 되어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꽃의 대 향연은 바로 장모님이 만들어 낸 하나의 작품으로서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화초 키우시는 실력이 대단하시다고 넌즈시 말씀드렸더니 한 마디 하신다. 화초나 자식이나  마찬가리라고 하면서, 물만 주고 학교만 보내 준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 관심을 갖고 남다른 애정을 흠뻑 쏟을 때, 모든 것이 잘 되는 법이라고.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평소 장모님의 성품은 그 분의 취미가 말해 주듯 다정다감하며 흥도 많고 인정도 많으시다. 동기간이든 이웃이든 모두 형편이 당신 보다 못 하면, 뭐든지 도와 주려고 하는 온정과 미덕을 겸비하고 있는 분이다.  

 

 한 예를 든다면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시골에서 공부하러 올라 온 조카들이 오갈데가 마땅치 않으면,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여 몇 년씩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두 서너명의 조카들을 위해 매번 그렇게 하셨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다. 또는 걸인이 문간에 찾아 오면 반드시 그냥 안 보내고 돈이나 밥을 주셨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오로지 그 분이니까 그런 온정을 베풀었다고 보면서 존경해 마지 않는다.   

 

 그날도 내가 너희들한테 줄 것은 없고, 이것이나 가져 가라면서 자식들에게 애지중지 키워 온 화분을 선뜻 내준다. 그러나 가지고 가서 잘 키울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아예 가지고 가지 말라고 단서를 다시면서 각자에게 의향을 물어 본다.  모든 자식들이 좋다고 하니까 한 두개씩 나누어 주신다. 특별히 우리에게는 한 두개가 아니고, 무려 여섯개의 화분을 주신다. 골라 가라고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처분만 보았더니, 좋은 것만 골라 주신다. 

 

 집에 갔다 놓고 보니, 수석만 있어 삭막하던 베란다가 갑자기 풍성 해 진다. 원래 화초와 돌은 자연물이라서 아주 잘 어울리는 법인데,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스럽기만 하다. 아마도 이 화분들이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면 우리집 베란다는 그야말로 별천지가 되어 지상낙원이 될 것이다. 그 날을 위해 열심히 돌보면서 잘 키워보고자 한다. 그것이 장모님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보면서.

 

  아침 일찍 일어 나, 베란다에 놓여 있는 화초들을 보면 장모님 얼굴이 떠 오른다. 항상 하해와 같이 너그러우시고 꽃 같이 아름다우신 우리 장모님이시여. 내내 건강하시고 부디 만수무강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 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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