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생활 수기

선대 조상님 묘소를 답사하면서.

凡石 2011. 1. 14. 22:22

 

 어제('11.1.13)는 종중 대의원회가 있어 아산에 다녀 왔다. 회의 안건은 종중자금 예치 건과 특정인 징계 건을 의결하기 위해 내려 갔는데, 참석인원이 과반수(10명 중 5명)를 겨우 넘어 징계 건은 차기로 미루고 자금예치 건만 의결하였다. 

 

 

 의외로 일이 빨리 끝나,  점심 식사 전에, 인근 송악에 있는 선대 조상님의 묘소를 답사 하였다. 회장님과 나는 지난 가을 시제 때 다녀 갔기 때문에 별로 새롭지가 않았으나, 다른 회원들은 처음 찾는 곳이라서 그런지, 얼굴 표정이 사뭇 진지하면서도 마음이 설레이는 모양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누구나 자기 조상의 뿌리를 찾는 다는 자체는 여러모로 감회가 깊을 것이다.

 

 

 묘지에서 바라다 보이는 앞 산 풍경은 엊그제 내린 백설로 뒤 덮여 평화롭기만 하다. 마치 어느 화가가 그려 놓은 설경화를 보는 듯 하다.  사맹공의 묘소까지 오르는 경사지는 눈이 안 녹아 무척 미끄럽다. 조심스레 한발 한발 내 딛지 않으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오늘따라 날씨가 푹하고 쾌청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조상님 묘소 앞에서 그 분들의 얼을 되 새겨 본다.

 

 

 답사를 마치고 온양시내에 있는 어느 어죽집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각자 살아 가는 얘기와 종중 현안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고 헤어졌다. 비록 오늘 회의 목적은 달성하지는 못하였으나, 대신 조상님의 뿌리를 답사하면서, 일가 문중들 끼리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의식과 일체감을 갖을 수 있었다는 것이  매우 유익한 하루였다고 본다. 

 

 

  

사맹공과 그 분의 자제인 당진공의 묘소 전경

 

 

 

사맹공 조상님 묘소 앞에서

 

 

 

 

시제를 모시는 제단 앞에서

 

 

 

선전관 조상님 묘소 앞에서

 

 

 

 

 선전관 조상님의 묘역을 단장하면서 세운 비석이다. 단기 4318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니 서기로는 1985년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5년이 되었다. 추진위원님들을 보면 선전관 조상님의 11세 직계 종손이신 전석(銓奭)씨 외 일곱 분이시다.

 

 그 중 태팔(泰八), 태복(泰復), 동식(東植)씨는 우리 동네 일가분들로서, 선전관의 둘째 손자이신 필문(必文)) 조상님의 후손들이고, 나머지 분들은 선전관의 큰 손자이신 응순(應舜)조상님의 후손들이다. 응순 조상님 후손들은 주로 청원 옥산 또는 천안 수신이나 병천 목천 등지에서 사신다고 한다.   우리 직계 조상이신 필문(必文)조상님은 천안 직산 이남리에 거주 하셨는데, 그 분의 6세손인 덕진(德鎭)조상님께서 지금의 아산 탕정 동산리로 이주 하셔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선전관 조상님 묘소 앞에서

 

 

 

선전관 조상님 묘소 앞에서

 

 

 

사맹공 묘소에서 내다 보이는 설경이 평화롭다.

 

 

 

 인근에 있는 어느 집안의 묘역을 견학하였는데 납골로 모신 곳이다.

앞으로 우리도 이런 식으로 묘역을 가꾸어야 할 것이라고 이구동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