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3.4.13) 오후 3시에 삼성동 한전 강당에서 거행되는 지인의 예식을 참관하고 나서, 인근에 있는 잠실 석촌호수의 벚꽃축제를 다녀왔다. 저녁 7시에 반포에서 소꿉회 모임이 있기에 그때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집에 갔다가 모임에 참석을 하려고 하였는데, 마침 태혁이가 석촌호수에서 지섭이를 만나 벚꽃구경을 하기로 하였다면서 함께 가자고 청을 한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전철을 타고 잠실역에 내려 호수 쪽에 들어서니 많은 인파로 길이 꽉 막힌다. 예전에는 벚꽃구경 같은 놀이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 판을 쳤는데, 요즘은 정 반대로 젊은이들이 더 많다. 청춘남녀들이 제각기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하다.
나도 이에 질세라, 휴대폰을 꺼내 풍경을 정성스럽게 담아본다. 아직 벚꽃은 활짝 피지 않아 별로였는데, 대신 구경 나온 젊은이들의 모습이 생기발랄하고 옷차림이 화사하여 축제분위기를 더욱 환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석촌호수를 한바퀴 돌고나서, 지섭이가 운영하는 던킨도너츠 가게에 들려 커피 한잔 하고 저녁 모임에 참석하였다.
사적 제101호. 높이 395㎝, 너비 140㎝. 이수(螭首)와 귀부를 갖춘 커다란 비이다. 비문에 새겨져 있는 원래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고립되었던 인조가 삼전도에서 직접 청태종에게 항복한 사실을 담아 세우고 이것을 대청황제공덕비라고 했다. 당시 청태종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서울에 침입하여 삼전도에서 진을 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를 포위 공격하여 마침내 항복을 받기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사실을 영원히 기념하려는 청태종의 강요에 의해서 세워졌다. 당시 비문은 이경석(李景奭)이 짓고, 오준(吳竣)이 해서로 썼으며, 여이징(呂爾徵)이 새겼다. 비의 표면 왼쪽에는 몽골문으로, 오른쪽에는 만주문으로, 그리고 뒷면에는 한문으로 사방 7품의 해서로 씌어진 우리 민족의 치욕적인 역사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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